102페이지 내용 : 고 하여 큰 잘못은 아니지 않을까 여겨지는 것이다. 개방적이면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는 가운데 다양한 요소가 공존하는 사 회에서는 혁신의 바람이 일게 마련이다. 기왕의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하려 면 맹목적인 수구에서 벗어나 조화와 융회를 지향하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청자에 은입사의 상감 기법을 적용하며 또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청 자기와를 제작한다든지, 선종과 교종의 조화를 이룬 돈오점수가 제창되는 등이 그러하였다.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커 조류가 거센 연근해의 특성에 따라, 두터운 판재와 평평한 바닥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배가 확고하게 뿌리 를 내린 것도 매한가지였다. 다양한 요소가 공존하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도 록 현실에 맞춰 혁신하는 창의성의 발현이다. 운주사의, 어디에도 없는 독특 한 형상의 불상과 석탑 및 칠성석이라든지 그 밖의 석조물을 두고, 흔히 얘기 하는 바 토속성이라는 것도 그러하다. 지역사회 기층민중의 정서를 창의적으 로 반영하기 위해, 기득권층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왕의 틀을 버리고 수구적 태도에서 벗어나 파격의 혁신적 다양성을 추구한 결과일 터이다. 고려시기 전라도의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을 거칠게 단순화해서 두 단어 로 압축하자면 개방과 혁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일반화시켜 표현하 자면 자유와 변화이다. 개방은 어느 것에도 묶여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표출이며, 혁신은 머물러 고정되지 않는 진취적인 변화를 지향한다.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는, 현실에서 어느 한 순간 어디에도 고여 정체되지 않 는 변화로 구현되게 마련이다. 비유하자면 자유를 근본의 바탕으로 하고 변 화를 현실에서의 작용으로 하여 개방과 혁신의 역사가 전개된다 할 것이며, 고려시기 전라도의 역사에서 그러한 측면을 읽어내 마땅하지는 않을까 생각 하는 것이다. 변동명 10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03페이지 내용 : 1. 조선왕조를 싹틔운 전라도 가. 조선왕조의 발상지 ‘풍패지향’ 전주 조선 건국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본향 전주는 새왕조가 일어난 풍패지향 豐沛之鄕이 되었다. 풍패란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이 풍패인 데서 비롯 되어 건국자의 고향을 일컫는다. 조선의 풍패는 이성계의 본향으로 선조들 이 살았던 전주와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동북면 영흥・함흥 일원이다. 넓게는 함경도와 전라도를 풍패로 지칭하기도 한다. 태조 이성계는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의 21대손이다. 전주 세거시 태 조 집안의 가계형편은 목조 이안사가 동북면으로 이주할 때 170여 호가 따랐 다는 것으로 보아 토호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몽고침략기 유민집 단의 하나로 보는 설도 있다. 태조의 6대조 이린李璘은 1170년 무신란의 주역 인 이의방의 동생으로 추정된다. 태조 집안은 이안사 때 전주를 떠나 외가인 삼척으로 이주했다가 동북면으로 옮겨 함흥・영흥 일원에서 살았다. 제3장 조선전기 10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