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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페이지 내용 : 전주는 건국 후 풍패지향이 되어 전주목에서 완산부로 읍격이 승격되었 으며, 태조 어진太祖御眞 태조 초상 을 모신 진전 경기전慶基殿이 설치되었다. 조 선은 건국 후, 건국자 태조의 어진을 한양과 함께 태조의 태생지인 영흥, 태 조의 선조들이 살았던 전주, 신라의 수도 경주, 고구려의 수도 평양, 고려의 수도이자 태조가 임금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개성 등 지방 5곳에 봉안하였 다. 경기전은 전주 지역 조선 건국 유적의 중심으로 지금의 전주 한옥마을 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 일원은 목조 이안사가 살았던 조선왕실 의 탯자리 같은 곳이다. 1410년 태종 10 에 태조어진을 전주에 봉안하였으며 1442년 세종 24 에 전주의 태조 진전을 경기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771년 영조 47 에는 경기전 북편에 조선왕실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과 시조비 경주김씨의 위패를 봉안한 조선왕실 최초의 시조사당 조경묘肇慶廟를 창건하였다. 1899년에 전주이씨 시조 이한의 묘역 조경단肇慶壇을 건지산 자락에 조 그림 1. 태조어진 국보, 전주 경기전, 어진박물관 제공 10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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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페이지 내용 : 성하였다. 1900년에는 이성계가 황산대첩을 거두고 귀경길에 전주에 들러 일 가친지를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다는 오목대梧木臺에 고종 친필의 ‘태조고황제 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 비를 세웠다. 같은 해에 목조 이안사의 구거지 이목 대梨木臺에 고종 친필의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 비를 건립하였다. 전주부성의 정문 ‘풍남문豐南門’은 풍패지향의 ‘풍’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전주부성 서문은 풍패에서 ‘패’자를 따서 패서문沛西門이라고 하였다. 전주객 사를 ‘풍패지관豊沛之館’이라고 한 것도 풍패지향에서 연유한 것이다. 세종대 에 전주사고를 설치한 것도 풍패에서 연원하였다. 한편, 남원・임실・진안・순창 등에도 태조 유적과 설화들이 전하고 있다. 남원에는 피바위를 비롯해 황산대첩비 등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 유적들이 있다. 1380년 고려 우왕 6 에 이성계는 양광・전라・경상도 삼도순찰사가 되어 운봉 황산에서 왜장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대파하였다. 임실 성수산聖壽山은 태조 이성계가 “성수만세聖壽萬歲”, 천명을 받았다는 곳으로 산 정상 못 미쳐 상이암上耳庵이 있고, 그 경내에 태조 글씨로 전하는 ‘삼청동三淸洞’ 비가 있다. 진안 마이산馬耳山은 태조가 꿈에 건국을 상징하는 금척金尺을 받았다는 곳이다. 순창 만일사萬日寺에는 태조가 무학대사를 만 나러 가다가 먹었다는 고추장 설화가 전한다. 나. 전라도 출신 개국공신 1392년 태조 원년 7월 17일 병신 태조 이성계는 개경 수창궁에서 역성혁 명 세력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태조 2년에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였으며, 태조 3년에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조선은 건국 직후인 태조 원년에 배극렴・조준・정도전 등 총 52명을 개국 공신에 책봉하였다. 개국 1등공신이 17명, 2등공신이 13명, 3등공신이 22명이 다. 이방원은 정도전에게 밀려 개국공신에 책봉되지 못했다가 태조 7년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후 자신과 방의・방간 형제를 추록하였다.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을 제외한 조선 개국공신 52명 중에 전라도 출 신은 이백유・심효생・오몽을・장지화 등으로 추정된다. 정용수는 출신지를 알 103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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