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페이지 내용 : 선조대 주요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16세기 호남사림은 정국운영의 주 도적 위치에 있었다. 효종대 비변사에서 지방 인재들을 발탁할 것을 아뢰면 서 “선조대 조정에 등용된 자들의 반수가 호남과 영남사람이었습니다.”라고 한 것은 그런 사실을 잘 대변해 준다. 전라도 출신 문과급제자에 관한 송만오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왕조 500 년 동안 전라도 출신은 총 972명으로 전체 문과급제자 14,609명의 6.7% 정 도 된다. 이 수치는 금산과 진산, 제주도를 뺀 현 전라도만을 헤아린 것이다. 이를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구분해 보면 전남 출신이 547명, 전북 출신이 425명이다. 군현별로 보면 전라도에서 가장 많은 문과자를 배출한 군현은 남 원으로 133명, 두 번째는 나주로 107명, 세 번째는 전주로 95명, 네 번째는 광주로 84명이다. 본관별로 보면 전주이씨가 872명 5.8% 으로 전국에서 가 장 많은 문과자를 배출하였다. 한편 전체 문과자 중에서 12,792명의 출신지를 분석한 이원명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서울로 5,502명 43.01% , 2위 경상도 1,750명 13.68% , 3위 충청도 1,328명 10.38% , 4위 경기 도 1,130명 8.83% , 5위 전라도 1,081명 8.45% 6위 평안도 1,006 7.86% 순이 다. 조선시대 전체를 놓고 볼 때 전라도가 충청도보다 문과자를 적게 배출하 였다. 그런데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다르다.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들을 비교하 면 15세기에는 경상도가 가장 많아 224명이고, 그다음이 전라도로 120명이 며, 그 뒤를 이어 충청도가 73명이다. 이 순위는 16세기까지도 그대로 이어 졌다. 즉 15, 16세기에 걸쳐 전라도는 경상도보다는 적지만, 충청도보다 많은 문과자를 배출하였다. 그런데 17세기 전반에 들어와서 경상도 236명, 충청도 148명, 전라도 113명 순으로 문과자가 배출되어 충청도가 전라도를 앞지르고, 이후 조선말 까지 이런 현상이 이어진다. 이와 관련해서 1589년 선조 22 전주 출신 정여립 의 모반사건이 주목된다. 이 사건 이후 전라도의 문과자 배출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11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19페이지 내용 : 생원진사시 사마시 합격자는 생원시 20,698명, 진사시 21,941명, 총 42,639명이 파악된다. 이는 조선시대에 설행된 총 230회의 생원진사시 합격 인원의 85%에 해당된다. 유호석의 연구에 의하면, 전라도를 거주지로 한 합 격자는 10%가 채 안 되는 4,239명 금산과 제주도 제외 으로 서울, 경상도, 충청 도에 이어 네 번째이다. 시군별로 보면, 전주가 465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 이 남원으로 431명, 나주 405명, 광주 315명 순이다. 5. 정여립 모반사건과 전라도 정여립 모반사건鄭汝立 謀叛事件은 1589년 선조 22 전주 출신 정여립이 모 역을 도모했다는 것으로 3년간에 걸쳐 동인 천여 명이 희생된 선조 8년 동서 분당 후 최초의 대옥사이다. 이 모반사건이 일어난 해가 기축년이므로 기축 옥사己丑獄事라고 한다. 정여립은 전라도 전주사람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수찬 벼슬을 지 냈다. 그는 본래 서인으로 율곡 이이를 추종하였으나, 율곡 사후 동인쪽으로 돌아섰으며, 스승 율곡을 비방하였다는 배사론背師論에 휩싸여 선조의 미움 을 받고 전주로 낙향하였다. 그는 진안 죽도竹島에 서실을 짓고, 상하합계인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매월 활쏘기를 익히고 술과 음식을 나누었다. 정여립은 체구가 장중하고 박학다재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사상大同思想’, 천하는 만인의 공유물이라는 ‘천하공물론天下 公物論’,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냐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의 사상적 면목을 지니고 있었다. 정여립은 당시로써는 혁신적 인물이었다. 정여립이 모역을 도모했다는 고변은 황해도에서 이루어졌다. 모역의 산 실은 전라도로 지목되었으나 고변은 모역에 가담했다는 황해도에서 이루어 졌다. 황해감사 한준 등이 정여립이 모반했다고 고변하면서 모역은 기정사실 이 되어갔고, 정여립은 진안 죽도로 피신하였다가 사건 초에 죽었다. 11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