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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페이지 내용 : 투에서 순절하였다. 이 싸움에서 조선군은 대승을 거두었다. 이치전투는 왜 군 측에서 임진왜란 3대전의 하나로 꼽았을 만큼 치열한 혈전이었다. 고경명이 이끄는 호남 최대의 의병군단은 곽영이 이끄는 관군과 함께 금 산성을 협공하였다. 고경명과 그 아들 고인후, 안영, 유팽로 등이 순절하고 패하였다. 순창의 한응성도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 금산성 전투는 일본 군의 전라도 공략 본거지를 공격한 것으로 비록 패했지만 일본군의 호남 침 입을 저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라도 의병은 또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인 진주로 나가 왜병 을 막았다. 1592년 10월 1차 진주성 전투는 진주목사 김시민이 전사하는 등 치열한 접전 끝에 왜군을 물리쳤다. 이듬해 6월 2차 진주성전투는 사력을 다 했으나 끝내 패하고 말았다. 충청병사 황진, 김해부사 이종인 등 많은 장수와 의병들이 이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성이 함락되자 호남의병장 김천일은 아 들 김상건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으며, 최경회, 고종후 고경명의 아 그림 6. 웅치전적비 12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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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페이지 내용 : 들 등도 남강에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장수 출신 논개는 기생으로 분장하고 왜군의 승전 축하연에 들어가 왜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였다. 임진・계사년 격전을 치르고 화의교섭이 진행되면서 조명朝明연합군과 일 본 양측은 경상도 남부지역에서 지리한 대치상태를 이어 갔다. 이때 1594년 선조 27 광주의 김덕령은 거의擧義하여 전국의 의병조직을 총괄하는 충용장 忠勇將의 군호를 받았는데,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고 무고되어 장살당하 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일본군은 전라도를 집중 공략하였다. 8월 남원성전 투에서 군관민 만여 명이 순절하는 등 4일간에 걸쳐 치열한 혈전을 전개하였 으나 패하였다. 남원성이 무너지자 전라병사 이복남・방어사 오응정・조방장 김 경로・구례현감 이원춘 등 4인의 장수는 시초를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가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만인의총은 남원전투 순절자들의 유해를 봉안한 곳이다. 일본군이 남원성 함락을 위해서 20여 일간을 소비하여, 조명연합군은 왜군의 북상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해 7월 22일 3도수군통제사로 재임용된 이순신이 수군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남원을 점령하고 임실을 거쳐 전주성을 함락하였다. 전주성을 지키던 명나라 유격장 진우충은 도망가고 없었다. 남원과 전주가 무너지면서 전라도 전역이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당시 관군은 물론 군현 수령들마 저 달아나고 없었다. 전라감사 황신의 보고에 의하면, 진산군수 신택申澤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관청에 남아 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비록 정유재란 때 전라도가 일본군에 점령되었지만, 임진왜란초 호남 의 병들의 결사적인 항전과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의 활약으로 조선 최대의 곡창 지대 전라도를 보존하여 조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순신이 1593년 7월 16 일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약무호남 시무국가”라고 한 것은 임진왜란 때 이런 전라도의 역할과 위상을 말해 준다. 나.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보존된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 한편 임진왜란 때 조선전기의 4대사고 중에서 전주사고에 봉안된 『조선 123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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