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페이지 내용 : 1. 정치의 격동적 변화 양란 이후 전라도 지역은 여러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정치 분야부터 알아보자. 선조가 죽자 광해군이 대북세력의 지원을 받아 영창대군 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대북 정권은 어린 영창대군을 죽이고 그의 어머니 인목대비를 감금시켰고,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외교를 펼쳐 서인으로부터 반 발을 샀다. 서인은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축출하고 인조를 즉위시켰다 인조 반정 인조가 친명・반후금 정책을 펴자, 후금은 조선을 침략하였고 인조는 강 화도로 피란 갔다 정묘호란 이때 전라도 사람들은 고장과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다. 호소사로 임명된 김장생 아래에 의병장으로 안방준 보성 ・고순후 광 주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군대와 군량을 모집하여 북상하던 중 여산에서 화약이 성립되었다는 말을 듣고 해산한 후 고향으로 각자 돌아왔다.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외교정책을 수정하지 않고 있는 조선을 다시 침략하였 다 병자호란 이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옮기어 저항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전 제4장 조선후기 12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29페이지 내용 : 라도 사람들은 또다시 의병을 일으켰는데, 옥과・순창 현감이 지역민을 이끌 고, 안방준・조수성 화순 등이 문도와 가동을 이끌고 출동하였다. 이러한 사실 은 지역민들이 편찬한 『정묘거의록』, 『호남병창의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인조에 이어 즉위한 효종이 죽자, 인조 계비인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를 놓고 정파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기해예송 이때 1년을 주장하는 서인의 의견이 채택되었는데, 여기에 박광일 광주 ・위백규 장흥 도 동조하였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 남인이 3년을 주장하였다. 특히 윤선도 해남 의 주장은 강력하여 곧 정치 쟁점화되었다. 서인의 반격에 윤선도의 상소는 불태워졌고, 함경도 삼수로 유배 가고 말았다. 고령에다 남인의 탄원이 이어 지자, 현종은 윤선도를 고향 가까운 광양으로 이배하였다. 효종의 비가 죽자, 또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갑인예송 이때 현종은 이 전과는 달리 남인의 주장을 채택하였다. 현종을 이은 숙종은 남인 중심으로 정국을 꾸려 나갔다. 전라도 남인은 기축옥사 때 희생된 정개청의 신원 및 그를 향사하는 자산서원 무안 의 복설 과 함께 정철의 관작 삭탈까지 주장하였다. 하지만 허견과 3복이 역모를 꾸 몄다는 고변으로 남인 정권이 붕괴되자 경신환국 , 서인에 의해 정개청 관련 주창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 감행되었다. 장희빈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를 계기로 남인 정권이 수립되자 기사환국 , 정국이 역전되어 마침내 자산 서원이 중건되고 사액까지 받게 되었고, 정철 또한 삭탈되었다. 하지만 갑술 환국으로 다시 서인 정권이 수립되자, 상황이 또다시 역전되었다. 이 외에 이 이・성혼・송시열・김장생의 문묘 배향 문제를 놓고도 전라도 사람들은 정파별 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소론의 지지를 받은 경종이 숙종을 이어 왕위에 올랐다. 경종은 질병으 로 일찍 죽고 영조가 노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즉위하였다. 자연히 소론과 노 론 사이에 정쟁이 격렬하였다. 소론의 일파가 왕위 교체를 위한 반란을 일으 켰다 무신란戊申亂 반란은 경기・충청・경상・전라도에서 일어났다. 이인좌가 이 끄는 경기・충청도의 반란군은 청주성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경상도에서는 정희량이 안음에서 거병하여 인근 거창과 함양 등을 점령하였 12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