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페이지 내용 : 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전주・남원 장터에 민심이 흉흉하다는 괘서가 걸렸다. 태인현감 박필현, 부안 유배인 박필현 형인 박필몽, 담양부사 심유현은 담양 에서 화약을 빼돌리고 부안・태인・남원・나주에서 반군을 포섭하며 반란을 준 비하였다. 특히 기축옥사 때 화를 당한 바 있는 나주의 나씨들이 주 포섭 대 상이 되었고, ‘변산적邊山賊’이 반란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점으로 보 아 그곳 사람들도 대거 참여하였던 것 같다. 반란군은 부안 평교나 임실 회 문산에 집결하여 청주성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전주성 입 성을 시도하였으나 이 역시 실패하였다. 박필현은 도주 중 체포되었고, 박필 몽은 무장 동백정에서 배로 도망치려다 체포됨으로써 반란은 끝나고 말았다. 무신란 진압 후 다시 남원 만복사에 거사를 알리는 괘서가 내걸렸다. 범 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관련이 없는 자들이 무수히 붙잡혀 들어오거나, 자백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또는 개 인적인 원한 관계에서 허위 진술이나 무고가 난무하였다. 연루된 사람들은 적게는 45차, 많게는 12차의 고문을 받고 고통을 참지 못하여 자백을 하거 나 그로 인해 참형에 처해졌다. 무신란 격문이나 「남사고비결」 등의 참서를 집안에 소지하고 있다가 수색 과정에서 압수되어 역적죄로 참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 뒤에도 크고 작은 괘서 사건은 계속 이어졌다. 그 가운데 나주 객 사 앞 망화루의 동쪽 두 번째 기둥에 괘서가 걸린 사건은 또다시 대형 옥사 를 불러일으켰다 나주 괘서 사건 이는 무신란에 연루되어 나주에 20년 동안 유배되어 있던 윤지가 주모자였다. 그는 나주 지역의 관리와 아전들, 나주에 서 함께 지냈던 같은 처지의 유배인들, 윤지를 스승으로 삼고 학문을 배웠던 자들,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았던 서울의 소론 당인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윤 지와 나주 사람들로 조직된 필묵계는 자금과 사람을 모으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중앙에서의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는 사이에 전통양반들끼리의 다툼도 있었지만, 신흥양반들이 등장하여 전통양반들과 다툼을 벌였다. 향 촌사회에서 지배층끼리의 다툼을 향전이라 한다. 향전은 주로 향청의 직임인 향임, 향교의 직임인 교임 자리를 놓고 펼쳐졌다. 12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31페이지 내용 : 2. 풍부한 물산과 경제 이어, 경제 분야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 민족사에서 획기적인 일로 농촌 의 정기시장인 장시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장시는 15세기 말에 물산이 풍부 하고 상부상조 전통이 강한 전라도 서남부에서 최초로 발생하였다. 이후 장 시는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8세기에 이르면 전국에 1,062개 있었고, 고을 당 3.4개나 되었다. 전라도에는 216개 있었고, 고을 당 4.1개였는데 전국에서 가장 높은 분포도를 보였다. 나주・순천은 13개 있었지 만 고산・고창・구례・만경・여산・용담・용안・화순은 1개 있었으니, 고을별로 편 차를 보였다. 장 이름은 장이 속한 면 이름이나 장이 서 있는 마을 이름을 따 서 짓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장이 서는 날을 따다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장이 들어서는 곳은 읍내, 포구, 군진, 역원 등이었다. 이들 지역은 인구가 많 고 교통이 발달한 곳이었으니, 장터는 지역 경제의 중심지였다. 그리하여 대 원군 때 몇 개 면을 묶어서 사창社倉을 설치할 때 장터가 그 대상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면 소재지를 정할 때에도 장터가 그 대상이 되었다. 장날은 처 음에는 15일마다 섰는데, 점차 5일마다 서는 5일장 체제로 자리를 잡으며 한 달에 6회 서게 되었다. 장시에서는 특산품뿐만 아니라 외지 상품이나 외국 수입품이 거래되었다. 특히 전라도에서 산출되는 곡류와 직물류・직물원료 및 수산물과 죽제품이 널리 유통되었다. 이를 취급하는 상인들은 노상이든 가게이든 간에 전廛을 경영하였고, 관아에서는 전을 상대로 세금을 부과하거 나 대출을 행하였다. 장세는 관아나 향교・서원의 경비로 사용되었다. 장날이 돌아오면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장인・농민, 그리고 친인척・지인을 만 나러 나온 사람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을 상대로 잠자리・밥・술을 파는 사람, 몸을 파는 사람, 잡기를 일삼는 사람, 공연을 하는 사람들도 북적 였다. 특히 손님을 끌어모아 물건을 팔기 위해 장꾼들이 불렀던 품바는 남도 음악의 한 갈래를 차지하였다. 목화는 고려 말에 들어온 이래 전라도에서 널리 재배되었다. 직물 가운데 129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