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페이지 내용 : 도 도학자들은 정몽주의 절의정신을 이어받아 새로 탄생한 조선왕조에 참여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주자가례』의 예법을 중시 여겨 원칙을 강조 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전라도 도학의 특징은 16세기 초기에 ‘신비 복위 상소’로 발현되었다. 이는 순창군수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이 강천사에서 결 의를 한 후 폐위된 중종비 신비를 복위시켜야 한다고 상소를 올린 것으로, 결 과적으로 당사자들은 유배를 가게 되었지만 신진사림의 결집과 조광조의 등 장을 가져와 개혁정치에 시동이 걸리게 되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전라도 도학자들의 위상은 5년 뒤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 일파가 내몰리는 기묘사화 때 또다시 증명되었다. 이때 화를 당한 전라도 도학자들은 재야에 머물며 유 능한 후학들을 양성하고 누정을 건립하여 사림정권 수립에 기여하였다. 그러 면서 김인후・이항은 태극음양에 대한 토론을 전개하였고, 기대승은 이황과 8년간에 걸쳐 사단칠정에 대한 토론을 행하여 전라도 도학의 학술사에서 기 념비적인 위업을 남겼다. 17세기는 예학시대라고 할 만큼 많은 예학자가 배출되어 학파를 수립하 였고 예서禮書 간행이 줄을 이었다. 예학의 성행은 성리학의 심화 발전에 따 른 자연적인 추세였고, 왜란과 호란 이후의 전후 복구의 문제와도 깊숙이 연 결되었다. 전라도 출신의 예학자로 윤선도를 꼽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예학 자가 학문 차원에서 ‘예’의 원리적 근거를 밝히는 데 주안을 두었다면, 윤선도 는 예를 정치와 연관시켜 ‘예에 의한 정치’를 보다 철저히 추구했던 점이 두드 러진다. 18세기에 전개된 호락논쟁湖洛論爭은 한국 성리학을 한 단계 발전적으 로 심화시킨 철학적 논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호락논쟁이란 충청도를 중심으 로 하는 호서 지역 노론의 학풍인 호학湖學과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 지 역 노론의 학풍인 낙학洛學의 논쟁을 말한다. 호학은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 장을 피력했다면, 낙학은 집권층으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적으 로 새롭게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려는 포용과 개방적 태도를 지닌다. 이들은 미발과 본성에서 기의 작용 여부, 기의 순선과 리에 대한 통찰, 심성일치와 이 기분합의 관점 등에 있어서 논쟁을 펼쳤다. 전라도에는 순창 출신의 양응수 13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35페이지 내용 : 를 비롯하여 전주 출신의 이기경 등 낙학 계열 문인들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호학의 입장을 대변한 학자로는 남원 출신의 이이근, 순창 출신의 정재흥 등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흥덕 출신의 황윤석은 호락논 쟁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식견을 지닌 인물이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학술논쟁이 생산적인 차원을 넘어 상호 비난과 분화 로 이어졌다. 그 결과 종장의 강학과 명망을 통해 학문적 영향력을 확대하여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한 학파가 형성되게 되었다. 전라도를 기반으로 한 학 파로는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학파의 외연을 경남 지역으로까지 확장한 기정 진의 ‘노사학파’,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학파의 기초를 이룬 후 전북 지역으 로 중심지를 옮겨 전국적인 문인집단을 형성한 전우의 ‘간재학파’ 등을 손꼽 을 수 있다. 리를 중심으로 한 성리설 체계를 구체화한 기정진의 학문적 명성 은 더욱 높아졌고, 위정척사를 주창하기도 하였다. 594명에 이르는 적전 제 자를 두었고, 그들은 나중에 항일 의병 활동을 펼쳤다. 리 중심의 성리설을 비판해 온 전우는 계화도에 정착하여 확인된 숫자가 1,522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제자를 두었고, 그들 역시 위정척사를 주창하였다. 한편, 17세기 이후 정치・경제・사회의 전반적인 변동에 바탕을 두고 제기 된 새로운 사상조류로서 현실비판과 개혁의식으로 충만된 실학이 등장하였 다. 실학의 비조로 평가되는 유형원이 20여 년간 부안에서 살면서 그의 사상 을 완성시켰던 점,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하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 50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하여 실학의 집대성자로 평가받고 있는 점 등 에 비추어 볼 때 전라도는 실학사의 초기에서부터 집대성에 이르기까지 현장 내지 산실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전라도 출신의 실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나경적, 신경준, 황윤석, 위백규, 이여 박, 하백원 등이 그들이다. 19세기에 가서도 정약용의 영향을 받아 황상, 이 강회, 이청 등의 ‘다산학단’을 비롯해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다. 19세기 중반 의 전환기에는 이정직, 이기, 황현 같은 이들이 나와 실학을 개화사상으로 발 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후기 실학사에서 특기할 만한 사안을 들라면 실학자를 가장 많이 133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