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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페이지 내용 : 사청 외에도 각종 계를 운영하여 적극적으로 사찰 경제를 운영한 결과 19세 기 초에는 막대한 재정적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나주 다보사에서는 재가의 거사들이 중심이 된 불향계佛香契를, 남원 천은사에서는 읍내 관리들에 의해 조직된 불량계佛糧契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였다. 사찰 건물의 안이나 밖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15세기에 그려진 무위 사 벽화는 조선초기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 고 행사 때 걸기 위한 그림[탱화]도 전라도의 여러 사찰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 경전의 내용이나 그 교의를 알기 쉽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인 변상도 또한 많이 남아 있는데, ‘화엄경변상도’가 많은 것이 전라도 특징 가 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화승畵僧이라는 그림을 전문으로 그리는 승 려들에 의해 창작되었다. 그들은 특정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독특한 불화양 식을 형성하였고, 사대부의 초상화도 그렸다. 그 가운데 1718세기에 지리 산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조계산문의 대표적 화승으로 꼽히는 의겸이 있다. 조선후기에는 도교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한 비기秘記, 곧 정치적 예언 서가 널리 유행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정감록』이었는데, 전국 여 러 곳에서 정감록 역모사건이 일어났다. 전라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7세 기 초반 호남의 전직 관리 윤운구 등이 진인眞人이 나타났으므로, 이제 새 왕 조가 일어설 것이라는 소문을 몰래 퍼뜨렸다가 적발되었다. 전라도에서 시 작된 ‘진인 출현설’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갔다. 1819세기 전라도에서도 『정 감록』 역모사건이 대기근이나 무신란 등과 연관되어 여러 번 일어났다. 정치 적 변혁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기를 만들고 확산시켰고, 그것에 기 댄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음에 분명해 보인다. 한편, 조선후기의 역사를 보 면 십승지에 대한 논의가 끝도 없었는데, 운봉 지리산이 그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후기의 비기에는 십승지 다음으로 각도에 산재하는 ‘길지吉地’를 언급하 였다. 덕유산, 내장산, 추월산, 변산, 조계산, 월출산, 팔령산 등이 전라도 안 에 있는 길지로 언급되었다. 십승지나 길지는 힘든 현실이 아닌 행복한 미래 가 보장되는 이상향에 대한 꿈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비기나 길지는 나중 에 동학농민운동이나 의병 항쟁 때에 구현되었다. 13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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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페이지 내용 : 지역 단위의 공동체 조직으로 대표적인 것은 향약과 계이다. 향약은 고 려 말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전라도 지역에서 일찍 설행된 향약으로는 1418년 태종 18 김문발에 의해 창안된 부용정 향약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이선제에 의해 광주향약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1475년 성 종 6 무렵 정극인과 그곳 사족들에 의해 창안된 태인 현재 정읍 고현향약도 전 국적으로 일찍 설행된 향약이다. 이는 향음주례를 통해 지역민의 유대를 돈 독히 하면서 회의 활동을 규정하는 동약洞約과 구성원의 명부인 동안洞案을 작성하였다. 향약은 16세기 사림파의 성장과 함께 널리 보급되었다. 나주 금 안동계는 오랜 전통을 지니면서 관련 문서를 다량 보유한 동계이다. 특히 영 암 지역은 영보동계, 구림동계, 장암동계 등 유서 깊은 동계가 설행된 지역으 로 유명하다. 한편, 면의 역할이 증대되어 가던 18세기에 면약面約이 등장하 는데, 현재 장흥 지역의 것이 잘 남아 있다. 그리고 산림의 보호를 위한 송계 松契도 조선후기에 등장하는데 심지어 금당도 같은 도서지역에까지 조직되어 있었다. 또한 서당이 널리 보급되면서 서당 운영을 위한 학계學契나 서계書契도 조직되었는데, 진도 칠전리 사람들은 철비를 세워 그 내역을 기록해 두었다. 일부 서당・학계 재원은 근대학교 설립 때 그곳 재원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전통시대의 자연재해로는 한해, 수해, 풍해, 냉해, 병충해 등 다섯 가지 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횟수가 가장 잦고 피해가 가장 큰 것은 가뭄이었 다. 여름철 홍수와 폭풍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들로 인해 농사 작황이 안 좋 으면 식량이 고갈되는 기근이 든다. 조선시대 기근은 3년마다 발생하고, 전 국을 강타하는 대기근은 20년마다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때 재력가 들은 재산을 내어 기아자 구제에 나섰고, 그러면 이웃들은 그 선행을 비석이 나 읍지 등에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곡식값이 뛰고 땅값이 폭락하는 상황 을 이용하여 돈벌이 기회로 삼은 악덕 재력가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기아자 들은 내년 농사 종자까지 먹어치우거나 초근목피는 물론이고 인육을 먹는 경우도 간혹 발생하여 듣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나서 구걸을 하거나 배를 타고 해외로 밀입국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임진 왜란 때에는 명나라 군영에 들어가 잡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였다. 간혹 13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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