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페이지 내용 : 도둑질을 일삼거나 무리를 모아 반란을 도모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참상을 막기 위해 관아에서는 기아자들에게 봄 보릿고개 때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 여 죽을 쑤어주거나 곡식을 주어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는 진휼을 실 시하였고, 성곽을 쌓는 데에 급료를 주고 그들을 동원하는 공공근로 사업을 펼쳤다. 나주목사는 관내 섬 현재 신안군 사람들을 구휼하기 위해 전함에 곡 물을 싣고 가서 직접 나눠주었다.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세금을 감면 하거나 훈련을 중단하고 유배인을 타지로 옮기는 조치도 취했다. 강진 병영에 유배 중인 하멜이 좌수영 현재 여수 으로 이배되어 고향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계기도 기근이었다. 기아자 스스로 장터에 나가 장사를 하거나 황무지를 개 간하여 자활을 도모하는 이도 있었다. 자연재해에 세금 폭탄이 겹쳐 부담이 가중되자 농민들은 항쟁에 나섰 다. 1862년에 전국 도처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임술농민항쟁 전라도에서 는 3월 27일 익산을 필두로 하여 4월과 5월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중앙에서 파견된 안핵사에 의해 폐정이 수합되어 중앙에 보고되어 삼정이정 청이 설치되는 결과를 보았지만 개혁은 지지부진하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전 라도 전체 53개 고을 가운데 38개 고을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참고 로 경상도에서는 18개 고을에서, 충청도에서는 12개 고을에서 농민항쟁이 발생하였다. 전라도에서 가장 많은 봉기 사례가 나타난 셈이다. 이는 전라도 지역에서 첨예한 계층 간 대립과 국가의 수탈이 보다 격심하게 전개되었음을 보여 준다. 4. 문학과 예술 이어, 문학과 출판문화 및 예술에 대해 알아보겠다. 조선왕조실록은 편 찬된 후 춘추관 이외에 지방에 설치된 사고에 보관되었다. 조선전기에는 충 주・전주・성주에, 후기에는 정족산・태백산・오대산・적상산에 사고가 있었다. 전주에 처음 실록이 보관된 곳은 승의사僧義寺였다. 승의사는 전주부성의 동 13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41페이지 내용 : 북쪽 성벽 안쪽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한국전통문화전당이 있는 곳이다. 전주사고 실록각의 건립은 1473년 성종 4 에 이르러서야 2층 누 각 형태로 이루어졌다. 1591년 작성된 『전주사고포쇄형지안』을 보면, 태조부 터 명종까지 13대 실록이 총 806권 577책으로 47궤에 보관되어 있었다. 이 외에 『대명력』・『칠정산』 등의 역서, 『고려사』・『삼국사절요』 등의 역사서, 『공 안』 같은 국가 회계장부 등이 13개의 궤에 보관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이 발 발하여 서울이 점령당하고 임금이 파천하면서 춘추관・충주・성주 사고는 실 록과 함께 소실되고 말았다. 왜군의 전라도 진입이 예상되자, 이듬해 1592년 6월에 전라도 관리들은 유일하게 남은 ‘전주 실록’을 정읍 내장산으로 옮기도 록 하였다. 그 일의 책임을 고창 선비 오희길, 태인 선비 손홍록・안의에게 맡 기었다. 이들은 위 책과 어진을 50여 바리에 실어 은적암・용굴암・비래봉 등 세 곳에 안전하게 옮기고 승려・사냥꾼・약초꾼 백여 명을 뽑아 수호에 나섰다. 그러다가 1593년 7월에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육로와 해로를 거쳐 평안도 안주 객사에 봉안되었다. 그사이에 전주를 점령한 왜군에 의해 전주사고는 1598년에 소실되고 말았다. 해주, 강화, 묘향산, 영변 등지를 돌던 ‘전주 실록’ 은 1606년 새로 인쇄되어 원본 1부, 교정본 1부, 신인쇄본 3부 등 5부를 춘 추관, 강화도, 태백산, 오대산, 묘향산에 나눠 보관되었다. 정부는 보다 안전 한 실록 보관처를 강구하던 중 무주 적상산에 산성을 수리하고서 1614년 광 해군 6 에 실록각을 건립하였다. 실록각 건립에 승려 50명과 인근 7읍에서 동 원된 인력이 투입되었다. 묘향산사고본 실록이 적상산 사고로 옮기어졌다. 사 고를 지키는 사찰과 승려 및 주민이 정해졌고, 행정적 책임은 무주에 주어져 그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무주의 읍호를 현에서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조선시대 서적의 간행은 관청, 사찰, 서원, 개인, 서점 등을 통해 이루어 졌다. 지방에서는 감영이 주축이 되어 서적을 간행하여 지역은 물론 중앙에 서 필요한 서적의 보급창구가 되었다. 전라감영의 소재지인 전주가 경상감영 과 함께 출판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전라감영이 서적을 간행하는 방 식은 크게 왕명에 의해서 간행하는 방식과 관찰사의 주관에 따라 간행하는 방식으로 구분한다. 감영에서 직접 행하지 않고 관찰사가 관할 군현에 간행 139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