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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페이지 내용 : 해양 활동이 매우 활발하였고, 표류인이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는 연구성과 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라도는 지리적으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에 위치하면서, 해안과 도서가 많은 지역이다. 따라서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유배지 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멀리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추자도, 진도, 완도, 신안 등에 내몰린 유배객이 많았다. 고려 말에 회진현 현재 나주 다시면 에 유배 온 정 도전은 신왕조 건국의 꿈을 꾸었고,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은 실학을 집대성 하였다. 최익현은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다 흑산도로 유배 간 바 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유배를 당하여 자신이 체험한 내용을 각종 기록을 통해 남기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곧 유배문학이다. 기록의 형태는 시조, 가사, 한시, 일기 등 으로 남아 있다. 당시 유배의 실상과 유배객의 심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 중한 자료들이다. 김약행의 「적소일기」, 김령의 「간정일록」, 이세보의 「신도일 록」 등은 진도, 임자도, 신지도의 지역 사정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과거 남성에 비해 여성들의 문학 활동은 미미하였다. 하지만 작품이 남 아 있는 일부 여성들의 활동은 특기할 만하다. 멀리는 15세기 후반에 활동하 였던 순창설씨를 비롯하여 송덕봉, 이매창, 김삼의당, 광주이씨 등이 작품을 남긴 전라도의 여성 작가들이다. 특히 유희춘의 배우자인 송덕봉의 작품을 보면, 유교적 부덕의 실현이나 아들・사위・조카 등 가족애가 표상화되었고, 남편과 주고받은 수창시가 많을뿐더러, 잠재된 욕망이 표출된 특징이 있다. 이매창의 작품도 신분을 뛰어넘는 인간미를 풍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라도 예술을 말할 때 단연 제일 먼저인 것이 판소리이다. 판소리는 소 리꾼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말과 노래로 풀어나가는 공연 예술이다. 판소리를 전라도 출신 광대들이 17세기부터 불렀다는 것은 오래전 부터 확인된 사실이다. 18세기 중반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유가遊街를 할 때 명창을 거느린 이가 있었으니 당시 판소리가 널리 보급되었음에 분명하다. 19 세기에 들어서면 명창이 확인되는데 전라도 출신의 권삼득, 모흥갑, 송흥록 을 오늘날 최고로 친다. 특히 소리꾼이 아닌 향리 출신인 신재효는 진채선 같 은 여성을 포함한 많은 명창을 길러냈고 판소리 이론을 정립하거나 사설을 14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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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페이지 내용 : 정리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 시기에 판소리가 궁중에 침투하는가 하 면 양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서편제 판소리의 성립으로 상징되는 서민 지향적 감성의 판소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전주대사습이 생겨나서 판소리 창 자들의 등용문의 역할을 하였다는 점도 이 시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20세 기에 들어서면 전라도 지역에 ‘협률사’란 공연단체가 조직되어 도내 여러 지 역을 순회하면서 포장을 치고 공연하는 일이 발생하여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 다. 배역을 정해놓고 공연을 하는 창극이 최초로 전라도 소리꾼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예기조합인 권번이 설치되어 그곳에 서 판소리를 가르치기 시작함으로써 다수의 여성 창자가 배출되었다. 전라도에서는 판소리 외에 각급 관아에서 의식음악으로 연주하였던 삼 현육각이 있었다. 양반들에게는 풍류음악으로 거문고를 대표 악기로 삼아 연주하는 정악正樂과 시를 지어 노래하는 정가正歌가 유행하였다. 평민들이 생활음악으로 즐겨하였던 것은 민요와 농악이다. 특히 그믐이나 정월 대보름 때 마을 가가호호를 돌면서 연주하는 ‘걸궁’도 성하였다. 사당패 같은 직업 음 악인들이 시장이나 부잣집을 돌아다니며 행하였던 공연예술 음악이 발달하 였던 것도 전라도 음악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에서 동학농 민운동 때 민중들이 미래의 비관이나 희망을 노래한 ‘녹두새요’, ‘가보세’ 등의 참요讖謠가 전승되었다. 참요의 전통성 또는 노래를 애호한 지역성은 여순 사 건 때 ‘여수 부르스’ 등 각종 노래를 지어 부른 것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전라도 출신의 화가로는 16세기에 묵죽을 잘 그린 양팽손, 호랑이 그림 으로 유명한 고운 등이 있다. 1718세기에 이르면 윤두서를 들 수 있는데, 그 는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풍속화를 가장 먼저 그린 인물로 이후 조선후기 풍 속화의 흐름을 이끌었다. 자신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자화상」을 남겨 ‘회 화의 새 시대를 활짝 연’ 화가로도 평해진다. 그의 화풍은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에게로 이어졌다. 19세기에는 허련이 진도에 운림산방을 열어 남종문인 화의 맥을 이어 나갔다. 그의 화풍은 후손들에 의해 목포의 허건, 광주의 허 백련으로 이어지며 남도 화맥을 형성하였다. 이 외에 이 시기 나비를 잘 그린 송수면, 포도를 잘 그린 최석환 등도 전라도 예술을 빛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143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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