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페이지 내용 : 결집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으며, 전라도 지회의 지도부 상당수가 일제에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는 점에서 그 항일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신간회운동이 정점에 들어선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촉발되었다. 10월 ‘나주역사건’이 직접적인 발단이었으나 일제의 민족차별적 식민교육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그리고 1926년 6・10만세사건 이후 의식화・조직화된 학생들의 항일역량이 크게 작용하였다. 1920년대 전반기부터 동맹휴학으로써 식민교육에 대항하여 온 광주의 학생들은 1926년 성진회醒進會 조직 이후 1929년 학교별 독서회와 독서회중 앙부를 결성하였으며, 이들 조직이 광주학생운동의 전개와 확산에 크게 기여 하였다. 1929년 11월에는 전남의 목포와 나주, 1930년 12월에는 전북의 전주 와 고창, 김제, 남원, 부안, 전남의 광주, 나주, 담양, 대구, 보성, 여수, 제주 등 지의 학생들이 시위나 맹휴로써 동참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간회 등 사회단 체들이 학생들의 투쟁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거치면서 이제 학생층은 민족운동의 중심세력으로서 위상을 굳혔으며, 학교 측으로부터 퇴학이나 정학 처분을 받은 이들은 이후 1930년대 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렇듯 광주에서 촉발되어 전국으로 확 산된 광주학생운동은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분수령이 되었다. 라. 19301940년대 비밀결사운동의 전개와 해외에서의 민족운동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국내의 민족운 동 세력을 더욱 탄압하였으며, 특히 중일전쟁 이후 이른바 ‘전시체제기’가 형 성되면서 표면적・합법적인 민족운동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항일적 비밀 결사가 조직되어 민족운동을 지속하였다. 이 같은 비밀결사는 전북에서 17개, 전남에서 12개가 확인되는데, 전 북은 전주가 7개, 전남은 광주가 5개로 가장 많았다. 특히 전북에는 조선 건국단朝鮮建國團과 신인동맹神人同盟 등 보천교普天敎와 증산교甑山敎 계통이 여럿이었다. 결성 추이를 보면 중일전쟁기 1937.71941.12 와 태평양전쟁기 16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63페이지 내용 : 1941.121945.8 가 반반 정도였으며, 전북에서는 태평양전쟁기에 조직된 사례 가 많았다. 이들 단체의 구성원은 종교 계통의 비밀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층 이었다. 대표적 사례는 전북의 전주농업학교 근화회, 전주사범학교 우리회・ 석류회・독서회, 이리농림학교 사민단・화랑회, 전남의 광주서중 독서회・무등 회 등이다. 또한 일본에서 전라도인들이 결성한 비밀결사도 5개가 확인된다. 이 같은 비밀결사들은 대부분 일제에 적발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학생층과 종교인을 중 심으로 민족운동의 불씨를 지켜 나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편 해외에서 민족운동을 벌인 전라도 출신들도 여럿이다. 정읍 출신인 고평과 보성 출신인 나정련은 대종교 계통의 독립운동단체에 참여하여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함평 출신의 김철과 광주 출신인 부인 최혜순, 함평 출신인 조카 김덕근 등은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유관단체 에서 활동하였다. 함평 출신인 김석, 정읍 출신인 나용균, 광주 출신인 정광 호, 무안 출신인 장병준, 화순 출신인 정호룡, 장성 출신인 변중선 등도 상해 에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만주에서 결성된 의열단義烈團에는 광주 출신 정율성과 담양 출신 김일 곤이 참여하였고, 김제 출신 정화암과 부안 출신 백정기, 나주 출신 나월환 등은 아나키스트로 활동하였다. 승주 출신 조경한, 영광 출신 최용선, 곡성 출신 장기문, 광산 출신 이사섭 등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투신하였다. 5. 근대시기 전라도인들의 생활과 문화 가. 근대도시로의 변모와 근대교육기관의 설립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육로와 항로의 교통망을 확충하였다. 물론 이 는 침략과 수탈을 위한 것이었다. 일제는 1907년 전주-군산 간 및 광주-목 16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