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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페이지 내용 : 근대음악은 기독교 선교와 관련이 깊다. 전라도에 설립된 천주교와 개신 교 계열의 교회와 학교는 서양음악의 산실이었다. 선교사들은 교인과 학생들 에게 서양음악을 가르쳤고, 음악회와 연주회를 열어 서양음악을 전파시켰다. 예배당이나 학교 강당에서 열린 각종 행사에서 교사와 학생, 교인들의 서양 음악이 공연되었다. 다. 종교계의 추이 불교계의 추이를 살펴보면 1904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개항장 군산과 목포에 일본불교가 상륙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강점 직후인 1911년 일제는 사찰령을 공포하여 불교계를 관리・통제하였으 며, 전국의 사찰을 31개의 본산本山과 산하 말사末寺로 재편하였다. 전라도의 본산은 전북의 위봉사, 보석사와 전남의 백양사, 선암사, 송광사, 대흥사, 화 엄사 등이었다. 1937년에는 전남 5개 본산의 주지와 간부들이 선암사에 모 여 전남5본산연합회를 결성하여 종무宗務를 통일하고 교육・포교사업을 실 시하기로 결의하였다. 교세의 추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1914년과 1939년의 사찰 수를 비교해 보면 사찰은 전북이 96개에서 116개, 전남이 63개에서 127개로 증가하였으 나 승려 수는 전북이 383명에서 238명, 전남이 894명에서 695명으로 감소 하였다. 1900년대에는 승려 교육을 위하여 주요 사찰에서 보통학교를 설립 하기도 하였는데, 선암사의 승선학교昇仙學校, 대흥사의 대흥학교大興學校, 위 봉사의 봉시학교鳳翅學校, 화엄사의 신명학교新明學校, 송광사의 보명학교普明 學校, 구암사의 창흥신숙昌興新塾, 백양사의 광성의숙廣成義塾 등이다. 여기에 서는 승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천주교의 경우 조선후기 발생한 진산사건珍山事件 1791 으로 전라도의 천 주교 신앙공동체는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유항검의 초청으로 전주를 방문하여 성사를 집행하는 등 재기를 모색하였 고, 유항검 등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대박청원大舶請願’을 추진하기도 하 였다. 16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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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페이지 내용 : 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발생하여 전북에서 20명이 순교하고 42명이 유배되면서 전라도 천주교계는 또다시 위기를 맞았고, 신자들은 고 향을 떠나 타지의 산간벽지로 숨어들어 교우촌敎友村을 형성하였다. 이 같은 신앙공동체는 전북의 고산, 진산, 금산, 순창, 임실, 용담과 전남의 광주, 곡 성 등지에 분포하였다. 1827년에는 곡성에서 정해박해丁亥迫害가 발생하여 전주에서 10명의 신자가 순교하였다. 이처럼 지속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인들은 좌절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1831년 로마 교황청에서는 조선에 대목구代牧區를 설정하고 신부들 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샤스탕 J. H. Chastan 신부는 1837년 전라도를 방문하 였다. 전라도에 진출한 개신교 선교회는 미국남장로회이다. 1892년 내한한 남 장로회 선교사들은 전주 1895 , 군산 1896 , 목포 1898 , 광주 1904 , 순천 1913 등지에 선교거점을 마련하고 포교에 나서는 한편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였다. 이에 따라 전주에는 신흥학교, 기전여학교와 전주예수병원, 군산에는 영흥학 교, 멜볼딘여학교와 군산예수병원, 목포에는 영흥학교, 정명여학교와 목포프 렌치병원, 광주에는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와 광주제중원, 순천에는 남・녀 매산학교와 순천알렉산더병원 등이 문을 열었다. 이들 학교와 병원은 개신교 선교는 물론 지역의 근대식 교육 및 의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외래종교인 기독교와 달리 민족적 성격의 종교도 출현하였다. 1909년 나철, 오기호, 이기 등은 서울에서 단군교를 ‘중광重光’하고 1910년 대종교로 개칭하였는데, 이들 모두가 전라도 출신이었다. 이들은 일찍이 을사오적 암살 등 항일투쟁에 참여하였으며, 강점 이후 만주로 거점을 옮기고 포교와 함께 항일무장투쟁도 병행하였다. 한편 동학의 3대 교주 손병희는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지방 에 대교구와 교구를 설치하였다. 1914년 전북 전주, 익산과 전남 강진, 순천, 장성에 대교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19061919년 전라도의 교세 변화를 보 면 교인은 전북이 2,000명에서 4,197명으로, 전남이 2,808명에서 6,287명 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전라도 천도교계의 전국적 위상도 그만큼 높아졌다. 165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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