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페이지 내용 : 천도교에서는 1908년부터 교리강습소를 운영하였는데 1912년의 경우 전북 17개, 전남 25개였다. 이같은 천도교의 조직과 역량은 1919년 전라도의 천도 교인들이 3・1운동을 주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1916년 원불교를 창시한 영광 출신 박중빈은 1917년 저축조합을 설립 하고 근검절약과 자급자족을 강조하여 마련한 재원으로 사업을 벌여 교단의 기초를 닦았다. 1918년부터 벌인 방언공사防堰工事로 얻게 된 간척지도 교세 확장에 기여하였다. 1919년 혈인기도血印祈禱 이후 박중빈은 부안으로 근거를 옮겼으며, 1924년 다시 익산에서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교명을 선포하고 익산총부를 건설하였고, 불교혁신을 주장하며 예법혁신운동, 사회개혁운동, 선농일치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인 1947년 원불교로 개칭하였다. 이 밖에도 전북에서는 증산교와 보천교 계열의 신종교들이 다수 창시되 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이상향인 신앙촌을 조성하는 한편 조선건국단이나 신인동맹 같은 단체를 결성하여 일제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라.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배의 유산 35년간의 식민지배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아직도 청산되 지 못한 어두운 유산을 남겼다. 일제에 협력한 인사들은 우선 도장관道長官과 도지사道知事, 군수郡守와 부윤府尹 등 고위관리를 꼽을 수 있다. 중추원中樞院 참의, 도평의회道評議會 의원, 경찰과 장교 등도 여기에 포함되며, 지역 부호와 유지 중에도 상당수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활동이 시작되 면서 전주와 광주에 사무소가 개설되었다. 전북조사부와 전남조사부는 각각 전국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많은 영장을 발부하였는데, 그 대상은 중추원 참의, 경찰, 관공리 등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방해로 반민특위가 와해 되면서 친일파 청산은 무산되었다. 한규무 16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69페이지 내용 : 1. 해방을 맞이하며 제2차세계대전은 전후방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전쟁에 동원된 ‘총력전 總力戰 total war ’이었다. 전쟁의 결과, 미소가 힘을 합친 연합국이 승리하고 독 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 동맹한 주축국이 패배하였다. 뒤이어 자본주의 세계 는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동유럽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은 소련을 중심 으로 재편되었다. 또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과 지배를 받던 아시아와 아 프리카 등지에서 민족해방을 바라는 식민지민족해방운동이 활발해지며 식 민지로부터 벗어나는 국가들이 생겨났다. 이렇듯 해방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승리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소 련의 참전과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 등 두 차례나 떨어진 원 자폭탄의 위력 때문에 일제는 더 이상 ‘옥쇄玉碎’하지 못하고 연합국에 ‘무조 건 항복’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해방은 1876년 개항 이후 계속된 일제의 침 략과 지배에 대응한 독립운동의 승리였다. 구한말 자주독립을 지키려는 운 제6장 현대 16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