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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페이지 내용 : 엔의 결정에 반대하며 독자적인 정부 수립의 길로 나아갔다. 2.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5・10 총선거’는 최초의 보통・직접・비밀・평등 이 적용된 선거이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선거였다. 비록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한 많은 정치세력이 참가하지 않았으나, 이 선거로 성립된 제헌의회는 다 른 한편으로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등장하는 무대였다. 제헌의회의 소장파는 반민법 제정을 비롯한 각종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이승만 정권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한편 남로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은 적극적인 단독선거 반대투쟁을 전개 하였고, 김구와 김규식은 5・10선거에 반대하며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 에 참여하였다. 이와는 별개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5・10선거를 감시하는 활동을 전개한 뒤 “1948년 5월 10일의 선거투표의 결과는 조선의 감시 가능 한 부분이며 조선 총인구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에서 선거인의 유효 한 자유의사의 표현이며 그들의 자유의사를 정확히 표시한 것”으로 유엔에 보고하였다. 1948년 12월 12일 유엔 총회에서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보 고를 승인하였다. 1948년 4월 3일 새벽 1시 제주도 한라산 중산간 지대의 오름 봉우리 에 봉화가 피어올랐다. 이날로부터 시작된 4・3사건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4・3사건은 해방 이후 쌓인 각종 모순과 1947년 3・1절에 있었던 경찰의 발포와 탄압, 서북청년회의 입도와 만행에 가 까운 행위, 단독선거의 추진, 남로당 제주도당의 노선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발생하였다. 4・3사건이 발생하자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신속하게 진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강력하게 전개하였다. 특히 평화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김익렬 연대장을 대신하여 새로 부임한 박진경 연대 17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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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페이지 내용 : 장은 강경하게 토벌작전을 전개하였고, 그로 인해 제주도 출신 사병들의 탈 영사건과 박진경 연대장 암살사건 등이 발생하였다. 또 제주도는 5・10선거를 유일하게 치르지 못한 선거구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전남 여수의 제14연대에 는 1개 대대의 제주도 파병 명령이 내려졌다. 10월 초순부터 제주도 파병을 준비하며 신무기가 보급되고 시가전 훈련이 실시되었다. 1948년 10월 19일 새벽 전남 여수 신월리의 제14연대 무기고 앞에서 총 성이 울리고 남로당원이던 연대본부 인사계 지창수 상사의 선동으로부터 여 순사건이 시작되었다. 여순사건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제주도 파병에 반대 하는 봉기로부터 시작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해방 이후 누적된 군경 간의 갈등, 숙군에 반대한 군대 내 좌익세력의 선동, 그리고 해방 이후 악화된 사 회경제적 모순 등이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막아서는 여수 경찰을 물리치고 여수 시내로 들어선 제14연대 반군은 순식간에 여수를 장악하고 통근열차 와 트럭 등을 이용해 순천으로 이동하였다. 저지하던 경찰을 무장해제 시키 고 순천을 장악한 반군은 북상하는 방향에 따라 병력을 배치하였다. 이 외에 도 제14연대에서 봉기했다는 소식을 들은 인근 지역에서도 인민위원회가 성 립되었다. 순식간에 제14연대의 봉기는 전남 지역의 동부 6군으로 확산되었다. 여순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와 주한미군사고문단은 신속하게 대응하였다. 즉시 한국군과 미군사고문단의 최고위급 연석회의가 열리고 10월 21일 반군 토벌 전투사령부가 설치 송호성 준장 되었다. 이후 총 10개 대대와 1개 비행대 경비행기 10대 , 해안경비대 함정을 동원하여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정부군 은 순차적으로 순천, 벌교, 보성, 광양을 탈환하고. 10월 27일 여수에 정부 군이 진입함으로써 여순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여수와 순천을 비롯한 전 남 동부 지역에서는 부역자 색출을 빙자해 수많은 민간인들을 즉결처분하는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또 입산한 반군을 토벌하기 위한 토벌사령부가 설치되는 가운데 빨치산 토벌을 빙자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여순사건 을 거치며 정부는 12월 1일에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는 등 체제를 정비해 극 우반공체제를 형성시켰다. 정부는 여순사건 이후 전향을 강요하며 국민보도 연맹을 만들어 ‘반공 국민’이 되기를 강요하였으며, 학도호국단을 만들고 교 17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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