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페이지 내용 : 던 2대악법반대투쟁과 혁신계와 학생들이 주도하는 통일운동이 활발해졌다. 1961년 5월 16일 군대가 한강 다리를 건넜다. 단순한 훈련이 아닌 정권 을 장악하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쿠데타 세력들은 ‘통일운동 과 장면 정권의 무능 때문에 은연자중하던 군이 병영을 벗어났다’고 주장하 였으나 그것은 이유가 아니었다. 한국전쟁과 휴전을 겪으며 10만에서 60만 으로 늘어난 군대가 그 힘을 바탕으로 정권을 뒤엎은 것이었다. 권력지향적 인 정치군인들은 군 내부의 인사 적체가 쌓이며 불만이 높아갔다. 5월 16일 새벽 해병대와 공수특전단이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로 들어와 방송국, 치안 국 및 국가 기간시설을 점거하였다. 5월 16일 군사혁명위원회 5월 19일 국가재 건최고회로 개칭 를 구성하며 모든 기구와 권한을 장악하였다. 국가재건최고회 의는 입법・사법・행정권을 장악하고, 7개의 분과위원회와 중앙정보부, 재건 국민운동본부, 수도방위사령부, 감사원 등을 통괄하였다. 또 각 도지사와 경 찰의 주요 간부들을 군인들로 교체함으로써 지방과 치안권을 군이 장악하였 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3공화국은 ‘정보정치’와 ‘공작정치’를 통해 권력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군사정부는 사회악 제거와 창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는 목표 아래, 폭 력불량배의 근절로 사회의 명랑화를 기한다며 총 8만 7487명을 검거하여 총 1243명을 검찰과 사법기관에 송치하고, 1만 8055명을 즉심에, 3246명을 국토건설사업장에 취역시켰다. 1962년 3월 16일 군정은 구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법률인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었다. 군정은 ‘구정권하에 서의 언론의 공기성을 망각한 방종과 난맥상을 숙정肅正한’다며 총 1170개의 언론기관을 대폭 정비하고 1961년 9월 12일 언론기관의 자율적 정화와 숙 정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를 창립시켰다. 1963년 민정 이양 을 앞두고 그전부터 중앙정보부는 새로운 정당을 만들 것을 준비하고 있었 고, 사전에 당원들을 모집하고 교육시켜 조직을 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 앙정보부의 ‘4대 의혹사건’이 터지고 쿠데타 주도세력 중 반김종필계에서 집 단 반발하기도 했다. 1963년 10월 15일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2년 여의 군정에 대한 평가와 사상논쟁이 벌어지는 등 치열한 선거운동 속에 치 17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79페이지 내용 : 러졌으나 여당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를 15만여 표 차로 누르고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3년 12월 16일 국가재건최 고회의의 해체되고 다음날 제5대 대통령 취임식이 치러지면서 제3공화국은 공식 출범하였다.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 군정은 지방 통제를 강화하였다. 원래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최초로 지방선거가 실시되고, 그 뒤 제2공화국 시기에 지방선 거 대상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확대 실시되었다. 쿠데타 직후에 각 도지사와 경찰 책임자 등에 군인들을 임명하였고, 1961년 7월 15일 지방공무원령을 개정하고 뒤이어 9월 1일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공포해 읍면자치제 를 폐지하고 군을 최말단 지방자치단체로 바꾸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 를 강화하였다. 지방자치를 폐지하는 법과 함께 공무원에 대한 숙청의 강화 및 국토건설단원의 강제 연행 등을 통해 국토건설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편중적인 지역개발로 인해 전라도 지역이 발전하 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농촌이 대다수인 전라도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많 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농촌의 빈곤으로 인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하 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1972년부터 박정희 정권은 새 마을운동을 시작하였다. 새마을운동이 실시되며 마을 주거환경이 개선되는 등의 일부 성과도 있었으나 실적 쌓기와 주민 동원, 그리고 정책 담당자들의 입장에 따라 추진된 사업이라는 비판이 생겨났다. 게다가 새마을운동을 거 치며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파괴되어 갔다. 한국사회는 1960년대 이후 급격하게 근대화되어 갔으며, 그 와중에 대 도시로 인구집중과 발전이 이루어졌다. 도시가 발전하는 것은 동시에 농촌 의 쇠퇴와 연동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도시개발을 둘러싼 문제를 낳게 되 었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국토를 재편한다는 명분 아래 수많 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77년 4월 20일 발생한 이른 바 ‘무등산 타잔 박흥숙 ’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도시경관 정비사업을 한다며 강제로 무등산 인근의 무허가 주택들을 없애려는 철거반원들에 맞서 박흥숙 이 대항하는 가운데 네 명이 죽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힌 사건이었다. 언론은 17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