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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페이지 내용 : 준이 남하하여 세운 마한으로 이어진다고 하여 역사적 정통성이 삼한 지역 에 있음을 강조하는 ‘삼한정통론’을 주장하였다. 철기시대에 접어들면서 묘제에 있어서 고인돌 형식의 묘제는 사라지고 지하에 장방형의 구덩이 묘광墓壙 를 파고 시체를 매장하는 토광묘나 큰 독이 나 항아리 등의 토기를 관으로 이용하는 옹관묘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만경강 유역의 전주와 익산, 그리고 완주와 김제 일대의 토광묘 등이 이 를 뒷받침한다. 한편 전라도 서부 지역에는 3세기부터 옹관묘가 괄목할 만한 형태와 크기로 발전하였는데, 나주 반남고분군은 대형 옹관고분의 대표 유적 지이다. 반남고분군에는 전통 옹관 묘제를 유지하면서도 백제계 금동관, 금 동신발, 가야계 화살통 등이 부장되어 있어 백제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에서 이탈, 독자화하려는, 유력 수장의 면모를 볼 수 있다. 54개 마한 소국 중 전라 도 지역에 위치한 마한 소국들은 삼국시대에 점차적으로 백제에 병합되었다. 백제는 한강, 예성강, 임진강 및 충청, 전라 지역 서해안 포구를 중심으로 성장해 동아시아 해양 중심국가로 부상했고, 전라도 지역은 백제 해양 진출 및 교류의 중요 거점이었다. 백제의 수도는 한성 서울 ―웅진 공주 ―사비 부여 지역으로 이어진다. 600년 즉위한 무왕은 『삼국유사』 속 서동설화 등을 통해 볼 때, 즉위 과정에서 익산 지역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익산 지역에는 삼국 최대 사찰인 미륵사지와 왕궁지인 왕궁리 유 적이 남아 있다. 왕궁리 유적은 체계적, 계획적으로 조성된 왕궁으로 외곽 담장 및 내부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백제의 유일한 왕궁 유적이다. 이를 통해 무왕이 즉위 후 익산을 백제의 새로운 터전으로 정하고, 미륵신앙을 기반으 로 사찰과 도성을 조성하여 백제의 중흥을 꾀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현 재 익산시는 공주시, 부여군과 함께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 적지구’로 지정되었고, 익산의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사비시대 백제왕국 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 주고 있다. 통일신라말 중앙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각 지역에서는 호족 세력이 할 거하고 지방 군웅이 등장하였다. 견훤은 백제의 부흥을 내세우며 후백제를 세웠고, 궁예는 고구려의 부흥을 내걸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당시 서남해안 01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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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페이지 내용 : 의 비장婢將으로 있던 견훤은 892년 진성여왕 6 무진주 현 광주광역시 를 기반 으로 성장하여, 900년 완산주 현 전주 를 도읍으로 정한 후 백제 의자왕의 원 한을 씻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후백제의 왕이 되었다. 후백제 892936 는 신 라, 후고구려와 함께 후삼국시대 패권을 다퉜고, 견훤은 고조선-마한-백제- 후백제로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천도 이후 견훤은 후백제 국호와 정개正開 연호를 제정하였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였 다. 이후 대내적으로는 설관분직設官分職 등 정치조직을 정비해 본격적인 국가 체제의 면모를 갖추었고, 대외적으로는 오월, 후당, 거란 및 일본에 사신을 보 내 교류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확보하였다. 후삼국시대 견훤은 공산전투 등 많은 전투에서 전과를 쌓았고, 왕건과 패권을 다퉜지만, 935년 왕위 계승을 둘러싼 문제로 인해 고려에 투항하고, 936년 견훤의 아들인 신검이 선산 부근 일리천전투에서 패함으로써 후백제 는 45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고려 태조는 940년 무주武州를 광주光州로 개편하였고, 983년 성종 2 에는 전국에 12목을 설치하면서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목, 나주목, 승주목 현 순천 이 설치되었다. 995년 성종 14 에는 3경 4도호부 10도제로 개편되면서 낭주 현 영 암 에는 안남도호부, 전북과 전남 지역에 강남도와 해양도가 각각 설치되었다. 1018년 현종 9 5도 양계가 시행되면서 전북의 강남도와 전남의 해양도 를 합쳐서 전라도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전라도라는 명칭은 전주목과 나주 목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전라도는 하나의 독자적인 지리 적 공간을 가리키는 이름으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조선 건국 후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조선왕조의 풍패지향豐沛 之鄕이 되었다. 풍패는 건국시조, 제왕의 고향을 의미한다. 개국시조인 태조의 어진御眞을 본향인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봉안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 니며, 전주와 전라도 지역이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1413년 태종은 전국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하면서 각 도에 관찰사 를 파견하였다. 전라도를 총괄하는 도내 최고 지방통치기구인 전라감영이 전 주에 설치되어 조선말까지 존속하였다. 감영의 운영은 임진왜란 전까지는 감 017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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