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180페이지 내용 : 박흥숙을 ‘무등산 타잔’으로 명명하며 그를 ‘괴물’로 매도하였으며, 왜 이 사 건이 발생했는가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나친 도 시개발에 따른 피해가 주민과 철거반원의 갈등에서 파생한 불행한 사건이었다.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에서는 화약을 실은 기차에서 한국화약 호송 원이 촛불을 붙여 잠든 사이에 화약상자에 옮겨붙는 바람에 대규모 폭발사 고가 발생하였다. 익산열차폭발사고 이리역폭발사고 로 인해 사망자 59명, 중상 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 총 1,402명의 인명 피해와 수많은 가옥이 파괴 되는 등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정부는 사고 직후부터 관련 정보를 통제하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복구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렇듯 이리역 폭발사고는 박정희 정권의 폐쇄적이며 일방적인 정책 추진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결과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집계되지 않은 채 한동안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경제개발로 도시가 발전했음에도 오히려 농촌이 쇠락하게 되자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을 제창하였다. 1970년 4월 ‘새마을가꾸 기’ 사업은 시멘트 업계의 불황을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농촌 마을 환경개선 사업의 추진으로 이어졌다. 계속되는 농촌의 불안은 정권으로 위기로 이어지 는 가운데 1972년 들어 박정희 정권은 본격적으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였 다. ‘근면, 자주, 협동’의 정신 아래 전국 각지에서 새마을운동이 추진되었다. 전라도에서도 새마을운동이 추진되어 새마을지도자가 양성되고 마을마다 ‘새마을부녀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우수 새마을로 전남에서는 장성군 북하 면 중평마을, 승주군 서면 증평마을, 무안군 청계면 화설당마을, 전북에서는 김제군 금산면 기룡마을, 익산군 왕궁면 상발마을, 남원군 주천면 용담마을 등이 선정되었다. 계속되는 정부의 압박에 따른 주민 동원과 ‘가정의례준칙’ 과 같은 규율이 농촌의 주민들을 강제하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으로도 농촌의 상 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농촌이 쇠퇴하게 되자 이를 극복하려는 농촌 내 외부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기독교계와 천주교계의 농민교육활동을 통해 배출된 농민운동활동가들이 가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회 그리고 YMCA 농촌사업 농민회 등을 조직하며 농민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런 가운데 농협의 17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페이지
책갈피 추가

181페이지 내용 : 전량수매라는 거짓 약속으로부터 발단이 된 함평고구마사건은 농민들의 투 쟁을 불러일으켰다. 1976년 11월에 시작된 전남 함평 지역 농민들의 고구마 투쟁은 1978년 4월까지 가톨릭농민회와 농민들이 투쟁함으로써 전국적 관 심사를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유신체제기에 농민들의 승리로 귀결되었 다. 전북 고창에서는 삼양사 소작답 양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시기부터 이어져 온 지주-소작관계에 따른 모순에 대한 농민들의 문제 제기와 투쟁이 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잘못된 농업정책의 결과로 농촌은 피폐해졌다. 여 기에서 맞서 함평고구마투쟁과 삼양사 농민들의 투쟁이 전개되었고, 이 같은 농민운동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농민들은 1980년대에 농민회를 결성하는 한편 수세거부투쟁과 농지개량조합선거 투쟁, 농협민주화 투쟁, 미국 농축 산물 수집저지투쟁, 고추 생산비 보장과 전량수매 쟁취 투쟁 등을 활발히 전 개하였다. 해방 직후 노동운동은 이승만 정권 초기의 탄압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심각하게 위협 받게 되었다. 1959년 11월 광주전남의 노동쟁의의 주요 이유는 임금인상, 체 불임금, 무고한 해고 반대 등이었다. 4월혁명 이전에는 주로 탄광과 항만시설 등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하였다. 4월혁명을 거치며 노동조합 이 대거 신설되고 전남방직은 6개월에 세 차례의 대규모 노동쟁의가 발생하 였다. 군산의 부두노조도 간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각 단위 노조의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노동운동 이 탄압받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기에는 도시산업선교회와 노동야학 들불야 학, 백제야학 등에서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북 지역에서 는 가톨릭노동청년회 JOC 가 출범하고 ‘노동자의 집 이리 ’과 노동야학을 통 해 노동자들과 연대하였다. 1981년 전북 이리 태창메리야스 노동자들은 민 주노조 사수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 치며 노동운동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 민주노조가 결성되고 이에 기 반한 연대조직이 결성되었다. 179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탐 색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