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184페이지 내용 : 에서 상처받은 공동체를 치유해 갔다. 이와는 달리 광주 외곽에서는 봉쇄선 을 지키던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많은 시민들이 희생 되었다. 시민들은 평화로운 해결을 요구하며 군과 협상하였으나, 군은 무조 건 항복만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광주 시민들이 바랐던 평화와 한국 사회 의 민주화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5월 27일 새벽어둠을 틈타 광주 시 내로 들어온 공수부대 특공조 대원들이 시민군들을 무력 진압하고, 뒤이어 탱크를 몰고 온 보병부대들이 광주 시내에 진주함으로써 5・18민주화운동은 끝이 났다. 전북 지역에서도 광주의 참상을 알리며 비상계엄에 대항하는 시위가 계 속되었다. 5월 19일부터 전북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주 시내에서는 이세종 의 죽음과 비상계엄을 알리는 시위가 전개되었다. 또한 천주교 전주교구청에 서는 광주를 탈출한 김현장의 ‘전두환의 광주살륙작전’이라는 유인물을 만 들어 배포하는 등 광주의 비극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5월 27일 전주 의 신흥고에서는 학생들의 시위가 전개되었고, 이후로도 신흥고 학생들 중 몇몇은 유인물을 제작해 전주 시내에 살포하는 활동을 계속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6월 24일 전국 최초로 개강한 전북대 의과대학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 하고 시위하였다. 광주 시민들의 저항을 무력 진압한 신군부는 곧바로 권력을 장악하는 계획을 실현하였다.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국보위 ’를 출범시켰다. 국보위의 의장은 대통령이었으나 실권은 전두환 상임위원장에게 집중되었 다. 신군부는 국보위를 통해 집권을 준비한 뒤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 제5공화국은 국가안전기획부 중앙정보부의 후신 , 보안사령부, 경찰 등의 기관을 통해 각종 공안사건을 조작하며 민주화운동세력을 탄압하였다. 이미 제5공화국이 등장하기 전부터 민주화운동세력은 탄압받고 있었고, 삼청교 육대와 10.27법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을 통해 폭압적인 통치를 실행하고 있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국민들의 기본권이 침해받는 독재가 계 속되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위하다 희생되거나 끌려간 사람들이 늘어 났다. 5・18민주화운동을 겪으며 다른 어느 지역보다 많은 피해를 봤음에도 18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페이지
책갈피 추가

185페이지 내용 : 전라도 사람들은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5・18의 진상 을 알리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오월운동이 계속되었다. 오월운동은 민주화 운동과 결합하여 계속되었다. 1983년 전두환 정권의 ‘유화조치’와 새로운 국 면에 접어들었다. 제적생들이 복적하고 학생운동세력이 본격적으로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런 가운데 ‘간접선거’를 규정한 제5공화국의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개 헌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개헌운동은 1986년부터 시작되었으나 당시 야당 인 신민당의 이민우 총재는 내각제 개헌 협상을 언급함으로써 그 저의를 의 심케 했다. 이런 가운데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 사받던 서울대 학생 박종철 언어학과 3학년 이 경찰의 고문을 받고 죽는 사건 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분노하던 국 민들의 감정에 불을 질렀다.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민가협 의 규탄을 시작으 로 전국 각지에서 고문을 규탄하는 행사가 열렸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 주 전남에서는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전남사회운동협의회 등을 결성하 고, 1987년 들어서 각 부문에서 박종철 고문치사를 규탄하며 시위하였다. 전북 지역에서 전북인권선교협의회와 전주시기독교교회연합회 등이 주도하 는 고문치사 규탄시위가 전개되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은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개헌 협상의 중단을 선언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각지 에서 호헌반대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21일 광주 전남의 천주교 신부들의 단 식농성을 시작으로 각계각층의 호헌반대운동이 활발해졌다. 전북에서는 3 월 9일 천주교 신부들의 단식농성, 3월 14일부터 기독교 목사들의 단식농성 이 시작되었다. 이 같은 흐름이 집약되어 1987년 5월 27일 서울의 향린교회 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5월 18 일 망월묘역에서 ‘4・13호헌조치 반대 및 민주헌법쟁취 범도민운동본부’가 발 족하였고, 전북에서는 5월 21일 ‘호헌반대민주헌법쟁취국민위원회’가 출범 하였다. 6월 들어 본격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호헌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 었고, 전라도 지역에서도 각 시군에서도 활발하게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결국 이 투쟁의 결과 6월 29일 여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호헌을 철회하 183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탐 색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