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페이지 내용 : 1. 종교 가. 백제의 불교수용과 미륵신앙 종교는 초인간적 세계를 믿는 신념체계와 의례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는 토템이나 정령, 무속, 조상신 등을 믿어 오다가, 삼국시대에 이르러 유교와 불교 등이 중국이나 인도로부터 유입되면서 종교교리와 교단조직을 갖춘 고 등종교로 발전하였다. 고구려에서는 372년 소수림왕 2 전진에서 순도順道를 보 내 불상과 불경을 전하였고, 백제는 384년 침류왕 1 동진에서 마라난타摩羅難 陀가 불교를 전하였으며, 신라는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묵호자가 들어와 불교 를 전파하였으나 크게 성행하지 못하다가 527년 법흥왕 14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에서는 불교가 전해진 뒤, 385년 침류왕 2 에 한산漢山에 절을 세웠으 며, 392년 아신왕 즉위년 2월에 교서를 내려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고자 하였 다. 백제에서는 주로 수도를 중심으로 왕실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으며, 율학 제1장 종교와 사상 18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91페이지 내용 : 이 깊이 연구되고 미륵신앙이 성행하였다. 미륵신앙의 경우에는 위덕왕 때 신라 승려 진자가 미륵의 화신을 만나기 위해 공주의 수원사를 찾아왔고, 일 본에서는 584년 사신을 백제에 보내 미륵석불 1구와 불상 1구를 보내줄 것 을 청했다. 전라도 지역에서도 미륵신앙이 크게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 제 무왕은 익산에 미륵사와 제석사를 짓고 왕궁리에 궁궐을 수축하였다. 미 륵사는 중원에 목탑과 금당, 동원과 서원에 금당과 석탑 각각 1개씩을 배치 하여, 3탑 3금당의 미륵하생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목탑은 선화공주, 두 개의 석탑은 백제의 지배세력인 사택왕후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 통일신라의 미륵신앙과 선종의 유행 백제에서 성행하였던 미륵신앙은 통일신라 때에 이르면 진표에 의해서 점찰신앙을 결합시킨 보다 대중적인 미륵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진표는 금산 사에 출가하여 순제順濟로부터 점찰법과 지장신앙에 접하였고, 27세 때 변산 불사의방을 기도처로 정하고 29세 때 지장과 미륵보살을 친견하였다. 미륵 보살은 진표에게 점찰경을 주었고, 189간자를 건넸는데, 특히 제8간자와 제 9간자는 미륵의 손가락뼈로 만든 간자였다고 한다. 진표가 주석한 금산사는 미륵이 머무는 사찰로 여겨지게 되어, 미륵장육금상을 조성했으며, 용화삼 회의 미륵하생을 의미하는 미륵전의 삼층 전각이 만들어졌다. 3층의 미륵전 은 미륵사의 3탑 3금당이 변형된 것이다. 이후 진표는 보은 속리산을 거쳐 강 릉인 명주로 갔고, 다시 금강산으로 들어가 발연사를 창건하였으며, 아버지 를 모시고 와서 효도를 다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진표의 미륵, 점찰신앙은 진표의 제자 영심永深을 통해 속리산에 전해지고, 다시 진표의 유골이 있었던 금강산으로 이어짐으로써 진표중심의 횡단루트를 형성하였는데, 영심永深의 제자이자 헌안왕의 왕자인 심지心地가 뼈간자를 대구 동화사로 옮김으로써 속리산, 대구, 경주로 이어지는 종단루 트가 형성되어 미륵신앙 체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후삼국시대에 석충釋 沖이 다시 왕건에게 뼈간자를 건넴으로써 개성, 속리산, 대구, 경주에 이르는 189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