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페이지 내용 : 거대한 종단루트가 확대 완성되었다. 이러한 미륵신앙의 횡단루트와 종단루 트는 후백제의 견훤과 후고구려의 궁예가 횡단루트를 통해 신라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으나, 궁예와 견훤이 왕건에게 패배함으로써, 고려와 신라로 이어지는 종단루트에 밀리게 되어 미륵신앙에서 진표가 언급되지 않게 된 것 으로 보인다. 신라하대에는 전라도에 선종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러한 선종의 유행은 당나라에 불법을 구하러 간 승려들의 활동에 힘입었다. 신라중대에 꽃 피운 의상의 화엄사상이 점차 현학화되어 부처님의 가르침과 거리가 있다고 느끼 는 인물들이 많아졌고, 신라 골품제의 한계나 김헌창의 난의 여파를 벗어나 고자 한 승려들이 중국에 가서 선종을 배워온 것이다. 당시 유학생들이 수용 한 선종은 6조 혜능의 가르침을 토대로 한 마조 도일 계통이다. 마조는 평상 시 마음이 부처이고 일상생활이 도라고 주장하여 서당 지장 등 많은 제자를 얻었다. 장흥 가지산문의 개산조 도의, 전라도 운봉의 실상산문의 개창자 홍 척, 곡성에 동리산문을 연 혜철은 모두 마조의 제자 지장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았다. 이렇게 당나라에서 전해진 선종은 전라도 지역에 크게 성행하였다. 실상 산문은 홍척과 수철로 이어지며, 화엄종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와 백장청규 와 같은 선종산문의 규율을 내세우며 발전해 갔다. 가지산문은 도의, 염거를 지나 보조선사 체징 때에 크게 꽃을 피웠다. 도선은 혜철의 심인을 얻고 광양 의 옥룡사에서 주석하면서 동리산문과의 관계를 유지하였다. 쌍봉사의 철감 선사 도윤도 크게 활약하였으며, 연곡사, 무주 황학난야 등은 선종의 대표적 인 사찰로 저명하였다. 이들 선승들은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널리 보시행을 실천하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회해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지 방에서 사찰의 자급자족을 중시하였고, 풍수지리설을 통해 자신들이 자리 잡은 선종 사찰이 최고의 길지임을 주장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포교의 중심 지로 삼았다. 불상도 구리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철불을 제작하고 상 표면에 개금을 함으로써 민중들을 배려하였다. 선승들의 차 마시는 문화는 다완과 19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93페이지 내용 : 같은 청자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지방에 새로운 교화의 중심지로 부각된 선종 사찰에서는 기존의 사찰 과 다르게 조사당을 건립하여 조사를 현창하고, 선승들이 죽은 뒤에는 승탑 과 탑비를 제작하였다. 승탑은 예배의 대상이 되었고, 석비는 거북이와 용을 통해 영원성을 나타냈으며, 비문의 내용은 산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주 력하였다. 선종 사찰은 신라하대 불교의 새로운 중심지였던 것이다. 다. 고려시대 불교의 결사운동과 민간신앙의 성행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전라도에서는 불교가 크게 발달하였다. 태조 왕 건이 훈요십조를 통해 숭불정책을 표방한 뒤, 매년 연등회, 팔관회를 개최하 였으며, 국사와 왕사제도를 두어 불교로부터 후원을 받았으며, 대몽항쟁기인 1251년 고종 38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또한 불교의 폐단을 막기 위해 고려 중 기에는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였고, 고려 후기에는 지눌과 요세에 의해 결 사운동이 전개되었다. 전라도에는 무등산이나 월출산, 지리산 일대를 중심 으로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는데, 강진 무위사는 고려 건국을 도운 형미가 주 석하였고, 조계산 송광사는 정혜쌍수의 불교개혁, 강진 백련사는 백련결사 의 장소였으며, 화순 쌍봉사는 최씨 무인정권의 기반이 되었고, 화순의 운주 사는 천불천탑의 신비를 간직한 곳, 김제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도량으로 명 성이 높았다. 특히 무신정권기에는 전라도가 고려 결사운동의 중심지였다. 순천 송광 사에서는 지눌이 1205년 희종 1 에 수선결사修禪結社를 시작하였다. 지눌은 「수심결修心訣」을 지어 수선결사의 참여자들에게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 신해문圓頓信解門,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의 세 가지 수행법을 제시하였고, 「계 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을 지어 수행자들의 일상생활과 예불태도,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규정하였다. 수선결사는 지눌에 이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 던 혜심 慧諶, 11781234 이 주도하였는데, 혜심은 지눌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 하였으며,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이 본질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국왕인 강종康宗이나 무신정권의 집정자 최우崔瑀를 비롯해서 많은 왕족, 고 191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