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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페이지 내용 : 위관료, 거사들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혜심 이후로는 몽여夢如, 혼원混元, 천 영天英 등이 수선결사를 이어 갔으나, 점차 무신집권자들이 원찰로 삼았으므 로 수선결사의 본래 정신은 약화되어 갔다. 강진의 만덕산에서는 원묘국사 요세가 1232년 고종 19 에 보현도량을 결 성하고 「백련결사문白蓮結社文」을 공포함으로써 백련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요세는 당시 불교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교관과 천태종의 실천수 행법을 중시하였다. 요세는 정토왕생과 천태지의의 「법화참매삼의」에 근거 한 법화삼매를 중요한 행법으로 실천하였다. 요세 이후 백련결사는 국자감시 에 합격한 천인天因이나 예부시에 급제한 천책이 법화신앙과 정토신앙을 통 합한 요세의 전통을 이어 갔다. 그러나 원간섭기에 이르러서는 천책의 제자 정오丁五가 요세가 아닌 의천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여 백련결사의 정신이 약 화되고, 천책의 제자 경의景宜와 경의의 제자 의선義旋 등이 원 황제의 복을 비는 묘련사에 활동함으로써 천태종이 친원화되어 갔다. 고려시대에도 민간산앙이 성행하였다. 신앙의 형태는 산천山川, 성황城 隍, 무속巫俗신앙 등 다양하였는데, 산천신이나 성황신의 경우 국가제사나 군 현제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전라도 지역에서 국가제사의 대상이 된 산 신으로는 지리산, 월출산, 무등산, 금성산 등이다. 지리산, 월출산, 무등산은 신라 때부터 제사를 지냈던 것에 비해 금성산은 고려시대에 국가제사의 대상 이 되었다. 이들 산에는 산신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왕실과 국가의 안녕을 빌었다. 수신도 숭배하였는데, 나주 지역에서는 고려의 사방을 상징하는 남 해신, 전주 지역에서는 비를 내리는 신통력이 있다고 여긴 마포 신이 있었다. 또한 각 군현에서는 고을의 수호신인 성황을 모신 성황신사를 두고 제사를 올렸다. 전주나 곡성, 순천, 순창에서 그러한 성황신앙을 살펴볼 수 있다. 무 속신앙도 성행하였는데, 산천신이나 성황신을 모신 신사에는 각각 무격이 있 어서 각종 의례를 거행하였다. 지방관이나 백성들은 가뭄이나 수해와 같은 재난이 닥치면 무격을 찾았고, 길흉화복이나 미래를 점칠 때, 누구를 저주할 때, 아플 때에도 무격을 찾아와 신령을 섬기며 무격의 말을 따랐다. 금성신당 의 경우에는 무격의 위상이 높았다. 금성산의 무격이 왕궁을 갈 때에 나주관 19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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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페이지 내용 : 아에서 역마를 내어주었고, 주현의 수령들이나 국왕이 공복을 입고 마중하 였을 정도로 무격을 예우하였다. 라. 조선시대 불교 사찰과 법통의 계승 및 예언사상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유교가 장려되고 불교가 억압되었다. 태종 때에는 242개에서 88개의 사찰로 축소되고, 세종 때에는 교종과 선종 18사만을 배정하였다. 세종 말부터 세조 때까지, 그리고 명종 때 문정왕후 등이 일시적으로 불교를 보호하기도 하였으나, 불교사찰이 축소되 고 사원노비가 혁파되었으며, 도첩제가 실시되어 승려가 되기 어려워졌다. 임 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는 승병들의 활약으로 불교에 대한 인식이 호전되고 산성의 수축과 수비를 담당하였으나, 여전히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 급자족에 힘을 기울였다. 특히 조선후기에는 종이 제조를 사찰이 담당함으 로써, 큰 사찰은 80여 권, 작은 사찰은 60여 권의 종이를 생산하고 납품하였 으며, 갖가지 잡역 부담에 시달려 없어진 사찰도 많았다. 전라도의 사찰로는 김제의 금산사, 고창 선운사, 장성의 백양사, 순천의 송광사와 선암사, 구례 화엄사, 해남 대흥사, 장흥 보림사, 곡성의 태안사, 영 암 도갑사, 강진 무위사, 순천 향림사, 화순 만연사, 그리고 승병사찰로 유명 한 완주의 위봉사와 여수 흥국사 등이 저명하였다. 전라도는 조선후기에 청 허 휴정의 문인들이 중심이 된 청허계, 부휴 선수의 문인들이 중심이 된 부휴 계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청허계는 사명 유정의 사명파, 정관 일선의 정관파, 소요 태능의 소요파, 편양 언기의 편양파 등 4대 문파를 이루었다. 특히 소요 파는 17세기 후반 대둔사를 근거지로 강학의 전통을 열었으며, 편양파는 휴 정의 사상과 수행기풍을 계승하여 삼문수업체계를 정비하였으며, 청허계 내 의 최대문파를 이루었다. 부휴계는 지리산권 일대와 송광사 등에서 발전하 였고, 부휴 선수, 벽암 각성, 취미 수초, 백암 성총으로 이어지는데, 성총은 송광사가 지눌을 계승하였다고 선언함으로써 부휴계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 였다. 부휴계는 벽암 각성의 문도 모운 진언에서 비롯되는 교학계보로도 유 명하다. 193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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