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페이지 내용 : 이들 청허계와 부휴계는 임제종의 법통을 강조하면서도 교종과 정토의 요소를 수용하여 경절문, 원돈문, 염불문 등 삼문수학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삼문수학의 전통은 먼저 불교강원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끼쳤다. 17 세기 전반 성립된 강원의 이력과정은 백암 성총에 의해서 사교과와 대교과가 확정되고, 선문염송이 대교과의 과목으로 정해지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백 암성총은 『화엄경소초』 등 강원교재와 관련된 불서를 202권을 간행하였다. 이후 18세기에는 화엄학이 유행하여 연암 유일과 최눌 사이에 부처와 중생 의 마음이 같은지 다른지에 대해서 논쟁이 일어났고, 백파 긍선과 의순 사이 에 조사선과 여래선, 의리선의 논쟁이 일어났다. 이러한 삼문수학의 전통과 함께 조선후기에는 염불수행과 관련이 있는 정토신앙 등 불교민중화가 크게 일어났다. 이러한 불교 민중화는 각종 천도 의식이나 예불관련 서적, 염불을 통해서 극락에 왕생한다는 염불문 서적이 크게 늘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전기에는 불교억제책으로 실시된 토지와 노비 정리로 경제기반이 극도로 위축되었고, 사찰에서 종이를 만들어 납품하는 지역紙役의 부담이나 잡역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천도제와 기복신앙은 여전 하였고, 왕실 원당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사찰에서는 각종 보사補寺활동과 계의 조직으로 사찰을 유지해 갔으며, 해남 대흥사나 영광 불갑사 등은 많은 토지를 경영하였다. 조선후기에는 민간에서 도교신앙과 정치적 예언서인 비기秘記가 널리 유 행했다. 왜란과 호란이 터지고, 불안정한 정국으로 인해 새 왕조가 들어설 것 이라는 정치적 예언서인 『정감록』이 널리 퍼지고, 난세에도 일가족을 보존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정감록』은 1628년 인조 6 에 전직관리 윤운구 등이 주장한 진인출현설 이후 진인에 의해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는 예언사상으로 발전한 것이다. 정 감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이심, 이연 형제와 전국을 유람하고 국운을 예언하 였으며, 전쟁과 역병의 참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십승지가 제시되었다. 운봉 지리산이 십승지의 하나로 거론되고, 덕유산, 내장산, 추월산, 변산, 조계산, 19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197페이지 내용 : 월출산, 팔영산 등이 길지로 손꼽혔다. 이러한 『정감록』의 영향으로 1860년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고 5만 년 태평세월을 예언하였으며, 1894년 동학농 민혁명 무렵에는 민간에 노래형태를 띤 비기가 널리 유행하고, 전봉준도 에 언가로서 명성이 높았다. 『정감록』에는 개성이 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고조선과 고구려의 부활을 소망한 가운데에서 나온 것 으로, 서북 출신 술사들의 소망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마. 조선후기 천주교 전파와 동학교세의 확산 19세기에 이르면 서세동점의 추세속에 조선에도 천주교가 널리 보급되 고, 동학이 출현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조선은 개항을 하고 더 이 상 봉건정부와 유교를 고집할 수 없게 된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포교자유가 인정되고,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앞세우며 동학도 교조신원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불교도 포교의 자유를 얻게 되고, 20세기 초에는 동학을 계승한 천 도교가 각종 사회운동과 종교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국권 상실을 전후한 시 기에는 대종교, 증산교, 원불교 등 각종 신종교가 출현하였다. 전라도에도 18세기 말 천주교가 들어왔다. 1784년 겨울 이벽의 집에 조 선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전주 초남이에 살던 유항검이 권철신 암브로시오 을 찾아가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 베드로 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아우구스 티노였다. 진산에 살던 윤지충도 정약전에게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에게 세례 를 받았는데, 유항검은 윤지충의 이종사촌, 윤지충은 정약용의 외사촌으로 친인척관계이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를 통해 유교식 조상제사를 금 하는 내용이 천주교 신자들에게 전해지니 1791년 5월 윤지충은 어머니 권씨 상을 당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모시지 않았다. 8월 장례식 때 이 사실 이 발각되어 조정에서 윤지충과 외사촌 권상연이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 을 받았다. 그리고 조정에서는 서학서를 모두 소각하고 서학의 전파를 금지시 켰다. 그러나 이후로도 고산 저구리로 이주한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 전주의 유항검, 무장의 최여겸 등에 의해서 천주교가 전파되어 나갔고, 1795년에 195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