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페이지 내용 : 보여 주었다. 아우 전귀생田貴生, 전조생田租生과 함께 학문과 시문에 능해 삼은三隱으 로 불린 담양 출신의 전녹생 田祿生, 13181375 은 『고문진보』의 간행을 주도 하는 등 유학 진흥에 힘쓰다가 나주 출신의 박상충 朴尙衷, 13321375 등과 함 께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등 고려 말에 개혁 지향적 면모를 보 여 주었다. 그리고 정몽주의 문인인 나주 출신의 범세동范世東과 정몽주의 생 질인 전주 출신의 최양 崔瀁, 13511424 은 조선 건국을 맞아 불사이군의 충절 로 은거하는 등 절의적 면모를 보이며 전라도 유학 정신의 면모를 역사에 아 로새겼다. 이처럼 고려 말 전라도 출신 유학자들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없지 않 았지만, 주자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권문세족과 대항하며 개혁을 추진 해 나갔으며, 특히 유교적 생활관습과 유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면모를 보여 주었다. 특히 의리 정신에 투철하여 왕조 교체기에 은거의 삶을 택하는 등 절 의적 면모를 전라도 유학에 아로새겼다. 다. 호남사림을 중심으로 한 성세기… 기축옥사 이후 맞이한 침체기 조선 초기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비롯하여 정치적 격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라도는 최덕지 崔德之, 13841455 , 김문발 金文發, 13581418 , 이선제 李先齊, 1390? , 정극인 丁克仁, 14011481 , 유분柳坋, 유숭조 柳崇祖, 14521512 등 뚜 렷한 학문적 성취와 주목할 만한 행적을 보여 준 일군의 학자를 중심으로 주 자학적 기풍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광주에서 향약 이 시행될 정도로 유교 의례에 의한 교화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전라도에서는 성리학적 소양을 갖춘 일군의 사림이 역 사 문화적 공동체로서 지역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호남사림’이 라 불리는 이 시기의 유학자들은 여말선초에 거듭된 정치적 변동 속에서 절 의를 지키고자 혹은 정치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전라도로 이주해 온 사대부 가문의 후예들이었다. 연산군 대에 서서히 등장하여 중종반정 이후 중앙 관계로 진출하였 20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209페이지 내용 : 던 호남사림은 무오사화戊午士禍 1498 로 인해 호남으로 유배 온 김굉필 金 宏弼, 14541504 의 영향을 받아 소학小學 중시의 학문적 경향을 강화하였 고, 조광조 趙光祖, 14821519 의 능주 유배를 계기로 사림 정신의 배양과 더 불어 학문적 성숙을 일구어 나갔다. 김굉필, 최부 崔溥, 14541504 , 송흠 宋 欽, 14591547 , 박상 朴祥, 14741530 , 이항 李恒, 14991576 , 김안국 金安國, 14781543 을 중심으로 구도화된 이 시기 호남사림은 명종대에 이르러 조선 유학의 지형이 서경덕徐敬德, 이황李滉, 조식曹植 등을 중심으로 학파의 형성 이 가시화되면서 지역 내 문인들 간의 통혼 및 사승, 그리고 이에 따른 학문 경향의 차이에 따라 그 구도가 송순 宋純, 14931582 계열과 서경덕 계열로 재편되었다. 김인후 金麟厚, 15101560 , 나세찬 羅世纘, 14981551 , 양산보 梁山甫, 1503 1557 , 임형수 林亨秀, 15041547 , 임억령 林億齡, 14961568 , 양응정 梁應鼎, 15191581 , 오겸 吳謙, 14961582 등의 송순 계열은 주로 광주, 담양 등 전 라좌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박순 朴淳, 15231589 , 정개청 鄭介淸, 15291590 , 노수신 盧守愼, 15151590 , 윤의중 尹毅中, 1524? , 유희춘 柳希春, 15131577 , 박응남 朴應男, 15271572 등 서경덕 계열은 나주, 함평 등 전라우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동서분당 이후 송순 계열은 대부분 서인으로, 서경덕 계열은 동인이 되어 중앙뿐만 아니라 향촌 사회에서 서로 대립하였다. 하지만 기축옥사己丑獄事를 계기로 서경덕 계열이 몰락하고, 주도권은 송순 계열로 넘어갔다. 하지만 중심인물들이 왜란을 거치며 상당수 사망하고, 인 조반정 이후 경기 및 충청 지역의 서인들이 주도하게 됨에 따라 시가와 문학 에 경도되었던 호남사림의 기반은 점점 약화되어 갔다. 호남사림의 기반 약화에도 불구하고 16세기 호남사림이 이룩한 학문적 성취는 남다른 것이었다. 본격적인 이기심성론에 대한 독자적인 이해를 보여 주며 조선 성리학사의 선구가 된 이항을 비롯하여 천명사상 연구를 비롯하 여 인심도심론에서 독자적인 견해를 피력한 김인후, 이황과 함께 사단칠정논 쟁을 주도한 기대승 奇大升, 15271572 등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일구어 낸 학 자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16세기 전라도 유학은 성세기盛世期를 맞이하였다. 207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