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페이지 내용 : 특히 이들이 일구어낸 학문적 성취는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학 자들과의 빈번한 교류를 통해 그 영향력이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주로 활동한 16세기 후반 이후 전라도 유학은 그 영향이 약화되었지만, 향후 언제 라도 부흥할 수 있는 기반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었던 셈이었다. 전라도 유학이 심대한 타격을 입은 기축옥사 이후 조선 유학의 전반적인 지형은 이이를 계승한 김장생金長生과 그의 학문을 계승한 일군의 기호학파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학계와 정계의 주도권을 가진 기호학파 내에서 전라도 출신 유학자들은 주변부에 위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학의 시대’라 불리는 17세기에 이르러, 전라도에서는 남인 계열의 윤선도 尹善道, 15871671 가 존왕론에 근거한 특징적인 예설禮說을 제기하였지만, 대부분의 전라도 유 학자들은 기호학파의 학설을 충실히 따르는 면모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이 전 시기와 비교해 침체기를 맞이한 가운데 퇴계학을 일본에 전한 강항 姜沆, 15671618 , 의리사상의 모범이 된 안방준 安邦俊, 15731654 을 비롯하여 송시 열 문하의 대표적인 문인인 박광일 朴光一, 16551723 등 주목할 만한 학자들 의 배출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전라도에서는 기호학파 내부에서 호락논쟁이 본격화 그림 2. 월봉서원 기대승 20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211페이지 내용 : 되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학문적 입장을 제시한 다수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비록 독자적인 학통을 수립하면서 학계 구도의 재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 만, 기호학파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으로 부각한 호론 계통의 이이근 李頤根, ?? 과 낙론 계열의 양응수 楊應秀, 17001767 , 황윤석 黃胤錫, 17291791 , 이기 경 李基慶, 17561819 등이 호락논쟁을 주도하며 전라도 유학의 학맥은 지속 되었다. 라. 호남실학, 현실 비판과 개혁의 산실이 된 전라도 기축옥사 이후 전라도에 대한 정치적 소외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이에 더하여 경제적 수탈이 가중되는 가운데 전라도 지역에서는 당시 주류를 형 성하고 있었던 주자학에서 벗어나 사회개혁과 현실 비판적인 사상적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특히 조선 유학의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17세기 이후 전라도에서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의 단초가 배태되기 시작하였고, 17 세기 이후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변동에 유의하면서 주자학의 관념론에서 탈 피하여 현실 비판과 개혁의식으로 무장한 이른바 실학이 전라도 지역을 중 심으로 태동한 것이다. 철학사상뿐 아니라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정 책론, 역사와 지리, 언어학 등 국학과 자연과학을 포괄한 실학은 서울과 경 기를 중심으로 한 근기실학과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호남실학으로 양 그림 3. 반계서당 편액 209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