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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페이지 내용 : 중심으로 학파의 기초를 이룬 후 전라 지역으로 중심지를 옮겨 전국적인 문 인집단을 형성한 전우 田愚, 18411922 의 ‘간재학파艮齋學派’ 등이 중심을 이루 었다. 이들 학파 이외에 이항로李恒老의 학맥을 계승한 화서학파의 대표적인 문인인 최익현 崔益鉉, 18331906 도 전라 지역 내에 적지 않은 문인을 배출하 며 유력한 문인집단을 형성하였고, 유학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호남학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기 李沂, 18481909 와 황현 黃玹, 18551910 , 그리 고 이들과 더불어 ‘근대 호남 삼걸三傑’로 일컬어지는 이정직 李定稷, 18411910 등이 활동하였다. 그리고 영남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전북 남원을 중심으로 전남의 곡성, 능주, 화순 등지에는 당시 영남 유학을 대표하던 곽종석 郭鍾錫, 18461919 의 문하로 입문하는 문인도 적지 않게 배출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19세기 이후 전라 유학은 이전 시기의 침체를 벗어나 기호학계 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학파를 배출하며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였다. 특정 한 학맥이나 학파가 전일적으로 전라 지역의 학계 및 사상계를 주도하기보다 는 다양한 학파들이 서로 연계되어 전라 지역의 유학을 주도하였다. 특히 전 라 지역을 배경으로 형성되고 활동을 펼쳐 나간 각 학파의 문인들은 특징적 인 학문과 사상은 제기하며 조선 성리학의 총결로서 문제의식을 드러냈을 뿐 만 아니라 급변하는 시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현실 대응 논리와 그 실천을 선도하며 시대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비록 봉건지배질서체제를 뒷받 침하는 성리학적 가치의 수호라는 시대적 사상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는 하였 지만, 전라 지역의 각 학파 유림이 보여 준 실천 지향적 위정척사 운동과 이에 이어진 의병 활동은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항하는 민족의식의 발로였다는 점 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전라 지역을 배경으로 형성되고 활동한 유림은 학파를 불문하고 19세 기부터 본격화한 삼정문란三政紊亂의 폐해를 직접 목도하면서 백성들의 고충 에 공감하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구체적인 개혁책을 제시하였다. 특히 전 라 지역의 유림은 학파적 결집을 통해 개항 이후 전라도 지역에 불어 닥친 위 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개항 이후 전라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제국주의적 21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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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페이지 내용 : 침탈에 따른 폐해가 극심하였고, 이러한 폐해는 지역 공동체의 위기로 다가 왔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을 목도한 전라 지역의 유림은 표면화하는 제국주의 침탈을 극복하고자 하는 실천적 지향을 추구하였다. 한편, 정통 유림의 사상적 지향과 구분되는 개신적인 면모를 갖춘 전라 지역 지식인들의 활동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20세기 전반기 전라 지역의 사상 적 면모를 다채롭게 구성하였다. 정통 성리학에서 벗어난 1900년대 초반의 전라 지식인들은 ‘호남학회’의 창립 등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선도하며 근 대 전환기를 맞이한 전라 지역의 사상적 변화된 지형을 보여 주었다. 이들의 사상적 지향은 문명개화이었지만, 전통 사상의 변화된 인식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20세기 전반기 전라 지역의 사상계 지형은 이전 시 기에 활성화된 정통 유학의 흐름이 약화하기는 하였지만 개신 유학적 흐름이 부가되었고, 이에 더하여 일제를 통해 서양의 학문과 사상이 본격 이입되어 근대적인 사상이 이후에 주류를 형성하는 구도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 정통과 이단 등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인 요소 가 중층적으로 결합된 채 전라도 내의 사상적 흐름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러 한 구도 속에서도 전라도의 사상적 기저는 전라도 특유의 개방과 소통, 개혁 과 변화가 중심을 이루었으며,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를 반성하며 미래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진하였다. 박학래 213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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