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페이지 내용 : 21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 역할 1. 문학 한국문학사를 시대 구분하는 두드러진 지표는 한글 창제와 근대 전환이 다. 조선 초의 한글 창제를 계기로 조선시대의 문학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 을 정도로 풍부한 유산을 갖게 되었다. 또 조선 말 근대로의 전환을 분기점으로 우리 문학사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으로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재 전하고 있는 작품의 수량이나 성격에 비추어, 전라도의 문학 역시 이 두 가지 지 표를 기준으로 삼아 다음 세 시기로 나누어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첫 번째 시기 는 한글 창제 이전인 원시에서 조선 초까지이고, 두 번째 시기는 한글이 창제되 고 근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조선시대이며, 세 번째 시기가 근대 전환 이후 현 재까지이다. 따라서 전라도의 문학을 이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가. 조선 초 이전; 중앙문화에 흡수되어 편린으로 남다 문헌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전라도 문학의 가장 오래된 모습은 옛 제2장 문학과예술
217페이지 내용 : 부족국가였던 마한의 집단가무에서 비롯된다. 해마다 오월과 시월에 행해졌 던 마한의 농경제의에서 연행된 집단가무의 잔영은 전라도의 농악이나 강강 술래 등을 통해 찾아지기도 하는바, 그 기저에는 풍요다산을 바라는 고대인 의 소망이 담긴 것으로 파악된다. 집단가무 이후 시가문학에 있어서는 『고려사』 악지 ‘삼국속악’조에 백제 의 노래로 기록된 「정읍」・「선운산」・「무등산」・「방등산」・「지리산」 등이 그 첫 머리에 놓인다. 하지만 현재까지 노래의 가사가 전하고 있는 작품은 고려속요 로도 널리 알려진 「정읍 일명 정읍사井邑詞 」하나에 불과하다. 이 밖에 비슷한 시기의 노래인 「완산요」와 「산유화가」의 유래나 성격 등이 『삼국유사』와 『증 보문헌비고』에 언급되어 있다. 향가로는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요」만이 서 동과 선화공주와의 사랑 이야기 및 익산의 미륵사 창건 설화와 함께 남아 있 다. 고려의 노래로는 궁중의 속악가사이기도 하였던 「동동」・「청산별곡」・「쌍 화점」이 전라도의 노래라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그 여부 를 단정하기 어렵다. 설화문학으로는 탐라를 세운 고을라・양을라・부을라가 땅에서 솟아났다 는 제주도의 삼성신화를 비롯하여, 일부 서사무가와 함께 지역에 따라 갖가지 구비설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문헌설화로는 백제 개루왕의 횡포로 도미와 그의 처가 수난을 당했다는 이야기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광주의 북촌 어느 부잣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정도이다. 한문학은 4세기에 이미 백제의 왕인이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 했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일찍부터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 는 백제의 오래된 작품으로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조위상표문朝魏上表文」 같 은 외교 문서, 「칠지도명문七支刀銘文」이나 「무령왕릉지석武寧王陵誌石」 같은 금 석문을 들 수 있다. 초기 작가로는 후백제 견훤을 보좌한 최승우의 활약이 눈에 띈다. 이후 고려를 지나며 뛰어난 작가들이 등장하여 나름대로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장연우, 김황원, 고조기, 오세재, 조통, 김구, 전녹생, 탁광무 가 이 『전라도 천년사』의 고려시대 문학을 말하는 자리에서 거론된 인물들 이다. 다음에 이들의 활동상을 간략히 요약한다. 215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