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페이지 내용 : 등의 실용서를 포함한 판매를 목적으로 한 책의 통칭이다. 전주는 전라감영 소재지로 전라도에서 생산된 물품이 모여 큰 시장을 형성하였고, 전라감영의 조지소造紙所에는 지장紙匠을 두어 조선후기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의 한지를 생산하였다. 전주부는 단일 도시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판하 였고, 남문시장 현 전주 남부시장 의 여러 출판소는 완판방각본完板坊刻本을 인 쇄, 판매하면서 서울, 대구 등과 교류하며 전국적으로 유통 판매하였다. 전주 이외에도 태인의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14종이 발간되었고, 나주, 남원에서 도 방각본이 출판되었다. 한편 조선후기 전라도에서는 판소리가 크게 유행하였다. 판소리는 18, 19세기에 이르러 양반과 평민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음악으로 발전하였 고,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소통 창구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19세기 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신재효는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 리하였는데, 이후 새롭게 정리된 판소리 사설은 『열여춘향수절가』, 『심청전』, 『화룡도』라는 이름으로 전주에서 완판방각본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전라도 회화는 16세기 화순 출신의 묵죽을 잘하였다고 전하 는 학포 양팽손, 해남 녹우당에서 출생한 풍속화의 흐름을 이끌었던 공재 윤 두서, 진도 출신 소치 허련이 각기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특히 녹우당에서 윤두서의 화첩을 빌려 보며 그림 공부를 시작한 허련은 추사 김정희로부터 문인화의 이론과 필법을 배워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가 되었다. 그의 화 풍은 호남 회화의 특징이 되어 이후 호남 회화의 근간을 이루었다. 조선시대 전라도 서예는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 東國眞體의 대두 및 보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국진체를 제창, 보급, 완성 한 인물이 대부분 전라도와 깊은 관련이 있거나 전라도 출신이기 때문이다. 동국진체를 주창한 옥동 이서와 절친이었던 윤두서는 전라도에 동국진체를 뿌리내리게 했다. 이서와 윤두서를 이어 동국진체의 맥은 원교 이광사에게 이어졌다. 이광사는 전라도 출신은 아니나 완도와 신지도에서 20년 넘게 유 배생활을 하였고, 그의 글씨가 전라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후 대흥사 스님이 02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23페이지 내용 : 었던 아암 혜장에게 계승되었다. 조선후기 서울의 김정희, 평안도의 조광진과 함께 3대 명필로 뽑히는 전 주의 창암 이삼만은 이광사를 비롯한 여러 대가들의 글씨를 본받으며 물 흐 르듯 막힘이 없고 자연스러운 독자적인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를 창안하였다. 그는 전라도의 멋과 흥취를 잘 살렸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근현대에 활동한 고창 출신 석전 황욱, 김제 출신 강암 송성용은 한국서예의 대가로 전라도 지 역의 서예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학문과 사상에 있어서도 큰 발전을 보여 주었다. 유학의 경우 1415세기 전라도 도학자들은 정몽주의 절 의정신을 이어받아 조선왕조에 참여하지 않고, 『주자가례』의 예법을 중요하 게 여겨 원칙을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1519년 훈구파에 의해 조광조 등의 신 진 사림파들이 숙청된 기묘사화로 인해, 전라도 도학자들은 재야에 머물며 후학을 양성함으로써 사림정권 수립에 기여하였다. 16세기 호남사림이 이룩한 학문적 성취는 남달랐다. 이기심성론에 대한 독자적인 이해를 보여 주며 조선 성리학사의 선구가 된 이항, 천명사상 연구 를 비롯하여 인심도심론人心道心論에서 독자적인 견해를 피력한 김인후, 이황 과 함께 사단칠정논쟁을 주도한 기대승 등 뚜렷한 학문적 성취를 일궈낸 학 자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16세기 전라도 유학은 성세기를 맞이하였다. 그러 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 1589 이후 호남사림의 기반은 약화되어 갔다. 기축옥사 이후 전라도에 대한 정치적 소외와 경제적 수탈이 가중되는 가운데 개혁적, 현실비판적 성격의 학문인 실학이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태동하였다. 실학은 서울, 경기 중심의 근기실학과 전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호남실학으로 양분되어 전개되었고, 전라도는 서울・근기 지역을 제외하고 는 거의 유일하게 실학이 꽃을 피웠던 지역이다. 호남의 실학은 지리적・사회 경제적 여건 위에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근기 지역과의 끊임없는 교 류 속에서 형성・발전하였다. 호남실학의 비조인 반계 유형원은 1653년 부안 우반동으로 내려와 20 년간 은거하면서 농촌 생활에서 체득한 농촌 경제의 안정책 등을 제시한 『반 021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