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페이지 내용 : 거했던 신말주의 아내 순창설씨 14291508 가 그 첫머리에 놓인다. 그는 문서 화文書畵에 두루 능하여, 불전 개축에 시주를 권면한 「권선문」과 8폭의 「화조 도」를 남겼다. 전라도를 넘어, 우리나라 여성문인의 선구로 꼽힌다. 순창설씨 의 뒤를 이은 작가가 담양의 송종개 15211578 이다. 유희춘의 아내였던 그는 한시를 통해 주로 부부와 가족 간의 사랑을 노래하였는데, 『덕봉집』에 작품 20여 편이 전한다. 부안의 기녀였던 이매창 15731610 은 가곡과 거문고에 능 한 시조 작가이면서, 한시도 잘 지었다. 한시 58편이 『매창집』에 전한다. 남원 과 진안에서 살았던 김삼의당 17691823 은 90여 편의 한시에 주로 남편 하 립과의 사랑 및 향토 자연의 서정을 담았다. 『삼의당김부인유고』가 남아 있 다. 19세기 인물로는 보성에서 태어나 해남윤씨 종가의 며느리로 출가한 광 주이씨 18041863 가 있다. 그런데 그는 신행을 앞두고 그만 남편이 사망하는 불행을 겪었고, 양반가 종부로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못하였다. 이런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억울한 심사를 한글 서간 형태인 「규한록」을 통해 매우 직설 적으로 토로하였다. 이렇듯 거론할 수 있는 전라도 여성문인의 수는 제한적 이다. 하지만 그 성향을 살펴보면, 양반가의 여성과 기녀, 불교적 세계관과 유 교적 윤리관, 화락한 부부애와 독신 종부의 고단한 삶 등으로 다양하다. 다. 근대 이후; 시대의 요구와 새로운 감성을 담다 한국문학사에서 근대 전환의 기점을 어디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 견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장르적 측면만을 고려하면, 현대의 시・소설・희곡・ 비평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등장을 기점으로 기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 론 이런 새로운 장르의 등장은 국내외에서 서구적 방식의 교육을 받은 문인 들의 활동과 함께 이루어졌다. 전라도에서 현대문학 활동의 선봉에 선 문인으로는 먼저 목포의 김우진 을 들 수 있다. 그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 「난파」・「이영녀」 등을 통해 현대 희곡사를 개척하였으며, 시인이자 비평가로도 활동하며 1920년대 전반기를 수놓았다. 전주의 이익상과 유엽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였다. 이익상은 소설 창작과 비평 활동을 하며 ‘파스큘라’ 및 ‘카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금 22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225페이지 내용 : 성』 동인이었던 유엽은 서사시 「소녀의 죽음」으로 주목받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조운과 이병기는 주로 시조의 창작과 연구를 통해 시조부흥운동의 성과를 높이는 한편, 소설가 박화성과 시인 조남령 등을 중 앙 문단으로 이끌며 지역 문단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동반자 작가로 분류 되는 소설가 채만식이 활동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그는 1924년 단편 「세 길로」를 시작으로 장편 「탁류」와 「태평천하」 등의 문제작을 내놓았다. 또 김진섭은 1926년에 결성된 ‘해외문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해외문학을 연구하고 소개하는 한편, 수필 창작에도 심혈을 기울여 수필의 문학적 경지 를 끌어올렸다. 「인생예찬」・「생활인의 철학」 등이 그가 남긴 명편이다. 1930년에는 『시문학』이 창간되며 박용철과 김영랑을 중심으로 ‘시문학 파’가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김현구와 신석정이 동인으로 함께 참 여하였다. 이들의 지향은 카프의 정치적 경향과는 다른 순수한 서정시를 추 구하는 것이었다. 구인회의 일원이기도 하였던 김환태 역시 이에 동조하여 문 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비평 활동을 펼쳤다. 카프계열의 전라도 문인으로 는 이익상 외에도 김창술, 정우상, 김태수, 김해강 등이 있다. ‘시문학파’에 이 어 순수문학과 생명 존중을 표방한 ‘생명파’의 활동도 주목된다. 이 활동에는 1936년 『시인부락』을 창간한 서정주를 중심으로 여상현과 이성범이 참여하 였다. 이 밖에도 이 시기에 활동한 전라도 문인으로 시의 임학수와 김현승, 시 조의 고정흠과 양상은, 소설의 이근영, 비평의 임순득과 윤규섭 등이 있다. 1941년 말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우리 민족에 대한 억압과 수탈 을 한층 강화하였다. 그러자 일제에 동조하고 협력하며 반민족적 행위를 한 문인들이 있었다. 채만식, 서정주, 임학수, 김해강 등이 그랬다. 이에 반해 조 운, 박화성, 김현승 등은 절필을 선택하였다. 8・15 광복은 민족 해방의 기쁨을 안겨주었지만, 또 한편으론 남북 분단 이라는 커다란 불행을 몰고 왔다. 그 결과 해방공간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거쳐 한국전쟁을 치르기까지, 양분된 우리 문단에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좌・ 우익 간의 대립과 갈등이 격화되었다. 이 시기에 전라도의 일부 문인 역시 당 시의 처지에 따라 재북 상태로 남거나 임순득 , 자신의 이념을 좇아 스스로 월 223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