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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페이지 내용 : 3. 판소리 가. 백제의 노래, 고려의 노래 민족음악학자인 존 블래킹 John Blacking 은 음악도 언어나 종교와 같이 인간이라는 종에 특유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음악은 거의 모든 인간에게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블래킹은 유보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는 모든 인간을 다 조사해 보지 못해서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다. 음악은 아마도 인류의 시원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도의 음악은 전라도 땅에서 우리 민족이 삶을 영위하기 시 작할 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일을 하면서는 노동요를 불렀을 것이고, 제의를 행할 때에는 집단적으로 주술적인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장례를 치를 때, 잔 치를 할 때도 노래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록이 없어서 실체를 확인 할 수 없을 뿐이다. 전라도 음악이 처음 기록을 만난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사』 「악지」 ‘삼국의 속악’에서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음악도 고려 에서 모두 사용하고 그것을 악보에 편입했다고 했다. 그런데 가사는 실려 있 지 않고, 제목과 내용 그리고 노래와 관련된 사연 등이 실려 있을 뿐이다. 여 기에는 선운산 , 무등산 , 방등산 , 정읍 , 지리산 등 다섯 편의 백제 노 래가 소개되고 있다. 선운산 은 부역에 나간 남편이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 지 않자 아내가 선운산에 올라가 남편을 생각하며 부른 것이며, 무등산 은 광주 무등산에 성을 쌓았는데, 백성들이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어 즐 거워서 부른 노래라고 했다. 방등산 은 신라 말에 도적이 일어나서 방등산 에 근거를 두고 양가의 자녀들을 많이 잡아갔는데, 도둑에게 잡혀온 여인이 자기 남편이 곧 와서 구출해 주지 않는 것을 풍자한 노래라고 했다. 정읍 은 장사하러 먼 길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노래이고, 지리산 은 무소불위인 백제 국왕의 권력에 저항하며 지아비를 향한 변함없는 정절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백성들이 성을 쌓으며 불렀다는 무등산 외에는 모두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이별과 그리움, 기다림과 원망의 정서를 노래 23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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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페이지 내용 : 한 것들이다. 이러한 정서는 지금도 전라도 예술의 근원적인 정서가 되고 있 다. 그러나 이 노래들이 백제 때 형성된 노래라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다만 이 다섯 편의 노래가 고려사회에서 백제 노래로 인식되어 있었고, 그러한 인식이 계승되어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 백제 노래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또 「악지」에 실린 고려속악 가운데는 장생포長生浦 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는 고려말 장생포 순천부에 속한 포구 에 침입한 왜구들을 장수 유탁 13111371 이 위엄으로써 싸움 없이 물러나게 한 것에 군사들이 기뻐하며 지었다 고 하였다. 고려시대 지방의 속악은 전국에 산재해 있던 광대・악공・창기들이 담당 하고 전파했으므로, 전라도 지방의 속악과 기악・잡기 또한 이들이 담당하면 서 연행했을 것이다. 이들은 지방 관아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다양한 행사에 서 연행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주목에서는 국가행사인 팔관회八關會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본래 팔관 회에서는 가무백희의 공연행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주에서 행해졌던 팔 관회에서도 가무백희가 연행되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 판소리의 발생과 발전 조선 전기에 전라도에서 향유되었던 음악들에 관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노래가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고려에서 조선으 로 넘어오면서 국가의 이념은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일 상이 완전히 바뀌거나 멈추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전기 는 후기에 다양하게 피어나는 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규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선조 후기에 전라도의 음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판소리이다. 판소리 는 음악으로 보나 문학으로 보나 매우 오랜 근원을 갖고 있다. 판소리가 부상 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기원이 되는 이야기나, 광대, 음악은 우리 민 족의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이러한 판소리가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대체로 17세기경이라고 본다. 235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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