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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페이지 내용 : 4. 회화·도자·서예 가. 전라도의 회화 가 조선시대의 회화 전라도에는 조선시대 이전에도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한 서화가들은 있 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품이나 이후 화단과 연결지을 만한 구체적인 활동 기록 등이 전해지는 것은 16세기 이후이다. 당대에 화가로 알려지지는 않았 으나 화순 출신의 16세기 문인 양팽손 梁彭孫, 14881545 은 18세기 문헌인 『동국문헌』 「화가편」에 묵죽을 잘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의 집안에는 그의 작품으로 전칭되는 네 폭의 묵죽도가 전해 온다. 오늘날 화가로 잘 알려 져 있지는 않으나 하천霞川 고운 高雲, 14791530 또한 그가 살던 당대에는 호 랑이 그림으로 이름이 있었다. 해남 녹우당에서 출생한 공재恭齋 윤두서 尹斗 緖, 16681715 는 18세기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풍 속화를 가장 먼저 그린 인물로 이후 풍속화의 흐 름을 이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세 밀하게 그린 자화상 을 남겨 조선후기라는 ‘회화 의 새 시대를 활짝 연’ 화가로 평해진다 그림 1 윤두서의 화풍은 그의 맏아들인 낙서駱西 윤 덕희 尹德熙, 16851776 와 손자인 윤용에게로 전 해졌다. 윤덕희는 부친 윤두서의 화법만이 아니라 그림에 대한 생각과 태도 등 여러 면을 계승하여 해남윤씨 집안의 화맥을 형성하였다. 손자인 청고 靑皐 윤용 尹愹, 17081740 또한 윤두서와 윤덕희로부터 그림 재주를 이어받 아 계승함으로써 조선 후기 3대에 걸친 선비화가 집안을 이루었다. 해남 녹우당 3대 화가의 학문과 예술은 외증손인 다산 정약용 丁若鏞, 1762 1836 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윤두서에서 정약용으로,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그림 1. 「자화상」, 윤두서, 지본담채, 38.5x20.5cm 해남 녹우당 24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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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페이지 내용 : 金正喜, 17861856 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실학의 흐름, 그리고 김정희와 진도 출신 소치 허련과의 관계는 호남화단의 뿌리가 그만큼 깊었음을 보여 준다. 윤두서 이후 한 세기가 지난 1808년 진도에서 출생한 소치小癡 허련 許 練, 18081893 은 19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이다 그림 2 녹우당에서 윤두서 의 화첩을 빌려 본격적인 그림공부를 시작한 그는 이후 추사 김정희의 문하 생이 되어 김정희로부터 문인화 이론과 필법을 배웠다. 급기야 5차례나 헌종 임금 어전에서 그림을 그려 바치는 영광을 누릴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허련의 회화는 당대에서 끝나지 않고 아들 미산米山 허형 許鎣, 18621938 을 통해 가전됨으로써 호남화단의 굳건한 토대가 되었다. 허련의 직계 후손들 이외에도 미방米舫 김익로 金益魯, 18451915 나 옥전玉田 임양재 林陽渽, 18481912 , 호석湖石 임삼현 任三鉉, 18741948 등이 그와 관련이 있는 것으 로 알려져 있다. 허련은 19세기 화단에 남종문인화풍을 토착화시켰고, 그의 화풍은 호남 회화의 특징이 되어 이후에도 호남이 전통회화의 고장이 되게 한 근간이 되었다. 19세기 후반 화순에는 문인화가 사호沙湖 송수면 宋修勉, 18471916 이 있 었다. 그는 사군자와 함께 나비를 잘 그려 ‘송나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송수면의 회화는 그의 조카인 염재念齋 송태회 宋泰會, 18721942 와 아들 매사 梅沙 송대회 宋大會, 18821956 로 이어졌다. 보성 출신 석전石田 이희순 李喜淳, 18941950 도 송수면을 사사하여 꽃과 나비그림에서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림 2. 「선면산수도」, 허련, 1866년 59세 , 종이에 수묵담채, 20x61cm 서울대학교박물관 245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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