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252페이지 내용 : 19141973 , 남원 출신 이경훈 19211987 , 고창 출신 진환 19131951 , 완주 출신 권영술 19201997 , 박노홍 1905? 등이 일본유학을 다녀와 미술교사 와 화가로 활동하였다. 이들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광주 전남과 전북 지역에서 재직한 일본인 미술교사들의 활동과 영향도 적지 않았다. 광주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 지역이었다. 강용운과 양수아가 재직한 광주사범학교와 광주사범대학은 광주 지역 추상회화의 산실이 되었다. 이곳 에서 정영렬・우제길・최재창・최종섭 등 추상화가가 배출되었다. 그럼에도 호남 서양화의 주류는 구상회화였다.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 한 오지호와 임직순의 역할이 지대했다. 1960・70년대 미술대학에서 졸업생 이 배출되면서, 광주・전남 지역의 화단도 활기를 띠었다. 대학 동문 혹은 동 향끼리 모임이 결성되고, 전시도 다양하게 이어졌다. 현대 회화계에서 기존 화숙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한국화의 흐름은 대학 미술교육이 본격화되면서 대학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대학의 한국화과나 서 그림 6. 「남향집」, 오지호, 1939년, 80x65cm,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25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페이지
책갈피 추가

253페이지 내용 : 양화과는 다양한 기법의 회화를 가르치고, 여러 전공의 다른 지역 출신 교수 들이 부임하면서 더욱 다채로워졌다. 또한 1980년대 새롭게 일어난 민중미 술, 그리고 조각, 공예, 디자인, 미디어아트 등 기존 서화 중심에서 여러 분야 로 다변화되었다. 다 각종 단체와 비엔날레 1980년대 전라도 화단에는 다양한 형태의 그룹전이 생겨났다. 이전 시 기 화숙이나 동문과 같은 단선적인 그룹을 떠나 비슷한 성향을 가진 작가들 끼리 새로운 모임을 만들면서 조형세계를 모색해 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대학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각 대학별로 교수와 학생, 혹은 같은 시기 동문들로 이 루어진 모임들도 생겨났다. 민족・민중미술론이 본격화된 1979년 9월 광주에서 ‘광주자유미술인협 의회’가 창립되었고, 1985년에는 민족미술협의회가, 1986년에는 광주목판 화연구회가, 1988년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가 결성되었다. 이 무렵부터 전국 대학에서 미술 운동조직도 결성되기 시작했다. 1981년 전남대학교의 ‘민화 그림 7.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251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

탐 색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