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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페이지 내용 : 반’, 1982년 조선대학교의 ‘토말’, 1988년 5월 광주교육대학에 미술패 ‘솟터’ 를 비롯 각 대학의 미술패들이 조직되었다. 1980년대 이후 세계는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해 문화의 경계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전라도의 회화도 가치개념, 작가의 태도, 그림의 형식 등에서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실시간 제공되는 전 세계의 미술 정보 속에서 작가들의 의식은 이미 동서양을 넘나들고 있다. 더구나 1995년 부터 이 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는 광주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의 실험정신과 세 계 곳곳의 파격적인 창작활동들을 한자리에 모아 과감한 발표와 교류의 장 을 펼쳐놓음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그림 7 이와 함께 전라남도는 2017년 전남국제수묵프레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수묵’에 초점을 맞춰 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전남에서 추진하는 ‘남도문 예 르네상스 프로젝트’ 선도 사업 중 하나로 호남 남종화의 전통화맥과 남도 수묵화 활동을 재조명하면서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 나. 전라도의 서예 가 조선시대의 서예 전라도의 서예는 ‘동국진체東國眞體’ 서예의 대두, 보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국진체를 제창한 인물, 보급한 인물, 완성한 인물이 다 전라도와 깊 은 관련이 있거나 전라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삶을 마친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동국진체 이전의 서예가로서 특기할 만한 인물이 김제 출신 송재松齋 송 일중 宋日中, 16321717 이다. 그의 해서나 초서는 까칠한 풍미를 풍기며 당대 명서가 들과는 다른 창의적 작품세계를 보인다. 옥동玉洞 이서 李漵, 16621723 가 동국진체를 주창하고 난 이후 이서의 절친한 친구였던 공재 윤두서는 전라도에 동국진체를 뿌리내리게 했다. 윤두 서는 사실적인 자화상과 풍속화의 태두라는 화가로서의 명성과 함께 서예가 로서의 의미도 주요하다. 이서와 윤두서를 이어 동국진체의 맥을 이어간 사람이 원교 이광사 李匡 25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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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페이지 내용 : 師, 17051777 이다. 이광사는 전라도 출신은 아니나 완도 신지도에 유배를 와 50대 이후 23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해남 대흥사의 침계루와 대웅전 현판 글 씨 외에 전라도 곳곳의 명찰에 그의 글씨가 남아 있다. 이광사의 서예를 전수받은 인물이 대흥사의 스님이었던 아암兒庵 혜장 惠藏, 17721811 이다. 학승으로 명성을 떨쳤던 아암 혜장은 이광사가 꽃피 운 동국진체의 맥을 계승하였고, 동시대의 명필인 전주의 창암 이삼만 李三 晩, 17701847 도 흡사한 작품을 남겼다 그림 8 이삼만 서예의 특징은 이른바 ‘유수체流水體’ 초서에 있다. 까칠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쓴 그의 글씨는 자연 스러운 결구에 빈틈이 있지만 허술하지는 않다. 이삼만의 제자로는 호산湖山 서홍순 徐弘淳, 17981976 , 대구사람 팔하八下 서석지 徐錫止, 18261906 , 기초 箕樵 모수명牟受明 등이 알려져 있다. 19세기 전라도의 서예계는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다양한 서풍의 영 향을 받으면서 많은 서예가가 배출되었다. 특히 김제 출신 석정 이정직, 벽하 조주승, 표원 박규환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항일시대에도 많은 서예가가 배 출되었다. 나 근・현대의 서예 이정직과 조주승이 전북의 김제에서 서예의 바람을 일으킨 이후, 전라 북도에서는 많은 서예가가 배출되었다. 성산 이순재 18691943 , 벽운 유재 호 18701953 , 염재 송태회, 심농 조기석, 추당 박호병, 유재 송기면, 효산 이 그림 8. 창암 이삼만의 글씨 253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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