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페이지 내용 : 1. 전라도의 이웃, 충청도〮경상도 흔히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 말은 자연환경이 인문환경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온 다. 그렇다고 자연환경이 역사와 문화 등 인류의 인문환경을 지배할 수는 없 다. 풍수지리 연구가들의 주장처럼 절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반면에 자연환 경의 장점은 극대화되어 왔고, 단점은 극복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기나긴 여정이었다. 전라도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전라도는 위치상 동북아시아의 중심지이다. 한반도의 서남부 최남단에 존재하면서 서해와 남해 두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전라도는 바다 를 건너 서쪽으로는 황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남쪽으로는 태평양을 사이 에 두고 오키나와・대만・필리핀과, 그리고 동남쪽으로는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 보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배경으로 인해 전라도 지역은 일 찍부터 하나의 문화권 내지 생활권을 형성해 왔다. 육로를 통해 대륙과 교류 제1장 자연환경 02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29페이지 내용 : 하면서도 바다를 통해 중국・일본과 독자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륙문화보다는 해양문화가 전라도에 더 많은 영 향을 미쳤다. 특히 해양을 통한 교류가 우세했던 때 전라도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외래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백제 왕인이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하고, 통 일신라말 중국에서 선종을 들여온 곳도 전라도였다. 당연히 전라도 사람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 개방성이 강하고 외래 문물이나 문화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라도의 동쪽에는 소백산맥과 섬진강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전라도와 경상도를 구분하고, 북쪽에는 금강이 동서로 흐르며 전라도와 충청도를 나 눈다. 전라도는 큰 강과 높은 산을 경계로 경상도・충청도와 접하고 있지만, 이들 지역과 고립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교류의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전라도 사람들은 수많은 길이나 고개 및 나루터를 통해, 경상도・충청도 사람 들과 물자를 주고받고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며 활발하게 교류하였고, 전란 때에는 함께 의병을 일으켜 국토를 수호하고 생사를 나누었다. 중앙에서 양 호兩湖라 하여 전라도와 충청도를 하나로, 양남兩南이라 하여 전라도와 경상 도를 하나로 불렀던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였다. 별칭으로 전라도를 호남湖南, 경상도를 영남嶺南, 충청도를 호서湖西라고 하였던 점을 활용한 연대의식의 발로였다. 전라도와 충청도는 백제・후백제 시절에 한 영토였다. 따라서 두 지역의 문화가 서로 공존할 가능성은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편이다. 조선시대에 전 라도 인사들은 충청도 출신들과 가장 활발히 교류하였고, 정묘호란 때에는 양 지역 사람들이 함께 ‘양호 의병진’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사실 조선시대에 서울에서 경상도 통영으로 통하는 길이 전주임실남원함양진주 노선이 었다는 점, 경상도의 세곡선이 순천영광군산을 거쳐 서울로 올라갔다는 점, 그리고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전라도 의병들이 도움을 주었 던 점 등은 이 두 지역이 긴밀하게 교류하였음을 증명해 주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이 전라도는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고, 예부터 한반도 외부는 물론 한반도 내부와 활발한 교류를 하며 삶을 영위하고 지역문화를 발전시 027 제1편· 전라도 자연환경과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