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페이지 내용 : 는 이야기인 데 반하여 수성당 설화 는 철마를 타고 서해를 날아다니며 왜 구를 무찌르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전라도 서남해 도서 지역에는 이중 장제인 초분草墳이 전해 온다. 초분 이란 일명 ‘최빈・외빈・초구・출분이・초상이・초우・초빈・고름장・출변・초장・이 중장례・복장례등으로 칭한다. 명칭에서 보듯이 초분이란 사람이 죽었을 때 곧장 매장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볏짚이나 가옥, 나무 위, 성벽, 돌무더기 등에 안치하였다가 육탈 후 매장하는 의례다. 장지를 옮긴다는 뜻에서 이장 移葬과 유사하다. 섬마을에는 마을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있는데, 이것을 우실이라 한다. 우실은 일명 ‘우술・우슬・돌담・돌담장・당산거리・방풍림・방조림・방피림・사정 나무거리・정자나무거리・노거수림’ 등으로 부른다. 대체로 마을신을 숭배하 거나 반대로 기피하는 형태로 보존되어 왔다. 즉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정주공 간을 비보裨補하기도 하고, 혹은 죽은 자의 공간을 보호해 주기도 한다. 우실 은 나무숲으로 조성되는데, 대체로 ‘대나무・팽나무・느티나무・동백나무’ 등 으로 만든다. 이외에 흙을 쌓아서 만든 ‘토담 우실’도 있다. 섬마을 갯벌 위에 놓인 노두露頭의 경우도 약식 의례를 행해 왔다. 노두 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그 외형이 드러난다. 신안군 안좌도 부속도서인 박 지도와 반월도에 ‘중노두’에 얽힌 전설이 전해 온다. 박지도 암자에 비구比丘 한 사람이 살았고, 반월도에는 비구니比丘尼 한 분이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지만 서로 연모하게 되었다. 그들은 들물 에 바다를 가로막고, 썰물에 갯벌에 돌을 놓아 섬과 섬을 건너는 노둣길을 만들었다고 전해 온다. 섬마을 역병을 방지하기 위한 의례로 도깨비굿이 전해 온다. 대표적인 사례로 전라남도 진도군 가사도의 도깨비굿이 있다. 이 굿은 여성들만의 제의 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가사도 도깨비굿은 마을제사와 관련이 있다. 정월 그 믐날 자정을 넘어서면 동구 앞에 젯상이 차려진다. 다음 날인 2월 초하루에 가 사도 여성들이 모두 도깨비굿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메구굿을 인도하는 장 대에 ‘월경한 속곳’을 꽂고 메구굿을 친다. 마지막 날에 나무로 만든 배에 허수 29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295페이지 내용 : 아비 액 를 실어 바다로 띄워 보낸다. 도깨비굿은 액귀를 몰아내는 의례였다. 마. 소금과 염장 소금은 바닷물을 토분 강원도는 쇠솥 에 담아 불을 지펴 끓여서 만들거나 혹은 바닷물을 햇볕과 바람으로 건조시켜 만들었다. 전자를 자염煮鹽이라 하 고, 후자를 천일염天日鹽이 부른다. 자염은 ‘화염火鹽・전오염煎熬鹽・육염陸鹽’ 등 으로 칭한다. 모두 바닷물의 염도를 높인 후 그 물을 삶아서 만든 소금이다. 따라서 자염 생산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료가 풍부한 곳이 최우선 요건이었 다. 이렇게 생산된 소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판매되었다. 보통은 소금을 사기 위해 섬마을을 찾아온 상인에게 판매하지만, 염막 주인이 소금을 전부 구매 하여 생산자가 직접 소금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때 염막 주인은 배에 소금을 싣고 육지로 나가서 농산물과 물물교환하기도 하였다. 염전에는 명절과 처음 소금을 내릴 때 제의祭儀를 행하였다. 명절의 경우 방안 제사보다 먼저 염전에 가서 제를 모셨다. 염전 제사는 남보다 먼저 지내야 수확량이 많다고 믿어 새벽에 올렸다. 제수는 돼지머리와 술로, 염막 앞에 차 려놓는다. 염막 주인이 먼저 절을 올린 다음 인부들과 함께 음복했다. 또 매년 첫 수확한 소금을 내릴 때도 돼지머리와 과일, 술을 장만하여 제사를 올렸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바람과 햇볕으로 수분을 증발시켜서 만든 소금이다. 천일염 생산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었다. 일본은 천일염 생산 방식을 새로 도 입하여 소금을 독점하고 세입을 확보하기 위해 정책을 수립하였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소금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이 폭등했다. 왜냐하면 대형염전이 대부분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46년에 남한 은 염전개발을 민간인에게 개방하여 소금 생산을 독려했다. 이때 신안 비금 도 주민들이 민간 차원의 천일염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비금도 사람 들은 처음 조성된 염전을 ‘1호염전’ 혹은 ‘시조염전’이라 칭하였고, 인접 섬마 을 주민들에게 천일염 생산방법을 강연하여 점차 천일염전이 증가하였다. 소금은 젓갈문화를 만들었다. 젓갈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 의하면, “683년 신문왕 8 2월에 일길찬 김흠운金 293 제3편· 전라도 정신과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