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페이지 내용 : 3. 물줄기의 서남부 소백산맥의 서쪽으로는 금강・만경강・동진강・영산강이 동고서저 지형을 따라 서해로 흐르고, 탐진강・섬진강이 북고남저 지형을 따라 남해로 흐른다. 이렇다 보니 작은 강물이 하나로 합쳐져서 큰 강을 이루는 평안도 대동강, 경 기도 한강, 경상도 낙동강과는 달리, 전라도는 여러 개의 물줄기가 도내 곳곳 을 각기 흐르는 형국이다. 그리고 큰 산과 긴 강을 울타리로 삼아 타 지역과 경계를 이루는 경상도와는 달리, 전라도는 동쪽만 산과 강으로 차단되어 있 을 뿐 북쪽・남쪽・서쪽으로 훤히 트여 있다. 이처럼 전라도의 지형지세는 물줄 기가 많고 사방으로 열려 있는 형국이다. 그러므로 전라도 사람들은 다른 지 역민들에 비해 그만큼 더 개방적인 성향과 다양한 문화를 지닐 수밖에 없다. 신라말 교종에 맞선 선종 사상의 도입, 조선말 양반 관료 지주층에 맞선 동학 농민혁명, 해방 이후 5・18민주화운동 등에서 증명되었듯이, 전라도는 역사 적 고비 때마다 늘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는 역동성을 앞장서 보여 왔던 것이다. 전라도 내에 흐르는 강 유역에는 전국에서 보기 힘든 선사시대의 고인돌 03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 역할 그림 2.금강대교
33페이지 내용 : 과 옹관묘 및 조개무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 고분에서 발굴된 토기・ 금동・철제・옥 유물과 집터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은 일찍부터 선진문화가 꽃 피었음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민족문화의 한 특징적 요소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이들 유적에서 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인 기원전 1500년 무렵에 부 식된 벼의 화분과 그때 사용하였던 여러 농기구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벼가 일찍 전래되어 오래전부터 미작문화가 탄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 실핏줄 같은 내륙 수로와 드넓은 원양 해로의 발달한 물길과 부근의 넓은 평 야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전라도 지역에는 풍부한 용수의 물줄기를 끼고 있는 넓은 평야가 펼쳐 져 있다. 완주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진안・전주에서 흘러온 고산천・소양천・ 전주천・탑천과 합류하여 호남평야의 중심부를 지나 황해로 흘러간다. 정읍 에서 발원한 동진강은 도원천・정읍천・원평천・고부천과 합류하여 김제평야 를 지나 황해로 들어간다.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 일대는 미옥간척지와 계화 도 간척지를 거쳐 새만금간척사업이 펼쳐진 곳이다. 그리고 담양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장성에서 흘러온 황룡강과 광주에서 유입한 극락강, 그리고 화순・ 나주에서 흘러온 지석강 등 3개의 지류에 의해 형성되어 전남의 대표적인 평 야인 나주평야의 젖줄이 된다. 이들 강 유역에는 삼한시대에 벽골제, 조선시 대에 만석보, 일제강점기에 대아저수지, 해방 이후에 섬진강 다목적댐과 영 산강 다목적댐 등 수리시설이 축조되어 주변의 기름진 평야지대에 농업용수 를 공급하였다. 이 외에 전라도 내의 해안에 위치한 시군에는 인근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바다로 유입하며 평지에 용수를 공급하여 해안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이리하여 전라도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농토를 보유한 우리 나라의 곡창지대라고 불린다. 전라도의 넓은 농토는 땅이 기름지고 일조량이 많아 단위 면적당 생산력이 높고 농산물 품질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이 러한 점으로 인해 악덕 양반 지주와 탐학한 부패 관리의 수탈이 이어져 임술 농민항쟁과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19세기초 일본 지주의 이주와 그들에 의한 민족차별과 경제수탈로 광주학생독립운동과 조정래 소설 『아리 랑』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031 제1편· 전라도 자연환경과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