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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페이지 내용 : 으며 추포麤布로 이용되어 유통과 통화의 수단이 되었다. 특히 1905년에 일 본영사 다카마쓰高松가 육지면을 도입하여 전라남도 고하도에서 재배하기 시 작한 후, 육지면은 전라도 서남부 야산지대에 널리 보급되었다. 이곳에서 생 산된 목화는 개항장 목포항으로 모아져 탈면되어 솜으로 만들어진 후 일본 으로 싼값에 실려 나갔고, 이 솜은 일본에서 실이나 옷감으로 만들어져 비싼 값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결국 일제의 신종 목화 보급은 자국의 자본주 의를 성장시키면서 우리를 일제의 경제 수탈장으로 만들었다. 그 창구를 만 들기 위해 목포항을 개항시켰던 것이다. 셋째, 전라도 지역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난온대 산림이 분포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임산자원은 차, 유자, 대나무, 닥나무이다. 차에 대해서 는 앞에서 말한 바 있고, 유자는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자라는데 약용과 제 수물로 이용되었다. 대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10℃ 이상이며 연중 최저기온이 -10℃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간 강우량이 1000㎜ 이상인 지역에서 잘 자라 는데,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전라도는 전국에서 대나무 생산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그로 인해 전라도 사람들은 대나무 공납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였지 03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 역할 그림 4. 김제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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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페이지 내용 : 만, 일찍부터 대나무를 이용한 바구니 같은 용기와 참빗 같은 생필품을 활발 히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는 전라도 농가의 알뜰한 수입원이 되면서 생활의 편리와 풍요로움을 가져다주었다. 전라도 토양은 닥나무 생육에 적합하여 전 라도 지역에 닥나무가 가장 많이 식재되었다. 닥나무는 종이의 주원료여서 전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종이 생산이 활발하였고, 그 품질도 전국 최고였 다. 그리하여 종이를 왕실에 납품하는 데에 적지 않은 고통을 겪기도 하였지 만, 종이로 책을 만들어 지식문화를 보급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뿐만 아니라 대나무와 종이를 이용하여 부채를 만들어 멋스러운 지역문화를 창조하였다. 이렇듯,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전라도 사람들은 성품이 온화하고 낙천 적이어서, 판소리 같은 민족음악을 발달시켰다. 그리고 전라도는 교통이 편리 하여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한 관계로 개방적이고 활동적이며 사교적인 지역 이기도 하다. 또한 농림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하고 사람들의 인심도 후하여 한 상 가득 내놓는 남도 한정식 음식문화가 발달하였다. 한편 전라도는 과거 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조선시대에만 하여도 전라도의 인구는 경상도와 근소 한 차이로 2위를 차지하였지만, 인구밀도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이었다. 최근 전라도 인구는 다른 시도에 비해 뒤처져 있는 상태로 감소 추세에 대한 주목 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덕진 037 제1편· 전라도 자연환경과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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