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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페이지 내용 : 전라도는 지형적으로 서남 양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온난하고 강 우량이 많은 기후에 비옥한 평야가 넓은 편이고 실핏줄 같은 내륙수로가 널 리 펼쳐져 있다. 이런 점으로 인해 해상활동이 활발하여 선진문화를 앞장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농림수산 물산이 풍부하여 풍요로운 삶을 누렸으 며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곳이었다. 또한 많은 인물을 배출하 여 위기 때마다 긴밀하게 연대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새로운 학문과 문 화 창달에 이바지하였다. 전라도 사람들은 문헌은 말할 것 없고 성곽, 건물, 비석, 지명, 축제, 용품, 기술, 소리, 음식 등등 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그것들 대부분 은 19세기말20세기초에 사라지고 일부만 남았지만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제2장 인문환경 03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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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페이지 내용 : 1. 생활의 터전 – 행정구역의 변천 전라도는 삼한시대 때는 여러 소국으로 분립되어 있었고, 백제 때에는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졌다. 전라도가 하나의 광역 행정구역으로 우리나라 역 사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후 전국을 9주로 재편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부터 전라도는 금강 과 소백산맥을 경계로 충청도・경상도와 인접하며 하나의 행정구역을 형성하 였다. 9주 가운데 완산주와 무진주, 고려초 10도 가운데 강남도와 해양도가 지금의 전라도 영역에 있었다. 곧이어 10도는 5도로 개편되었는데, 그때 강 남도와 해양도가 합병되어 1018년 전라도로 탄생하게 되었다. 전라도는 조선 시대의 8도 가운데 하나로 그대로 존재하였고, 갑오개혁 때의 23부를 거쳐 1896년 13도 체제하에서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로 나누어져 오늘에 이른다. 결국 전라도는 9주, 10도, 5도, 8도, 23부, 13도로 이어지는 지방제도 개편 속에서 존재하면서 그 위상을 세웠다. 고려 후기부터 전라도는 ‘호湖 김제 벽골제 또는 금강 의 남쪽’이라는 의미의 호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 후 호남이라는 용례는 전라도 사람들에 의해 자신들 힘의 집결이 필요할 때나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말할 때 즐겨 사용되었다. 전라도는 통치의 편의상 좌도・우도, 상도・하도, 산 읍・해읍으로 나누어졌다. 이 가운데 좌도・우도와 산읍・해읍은 산지와 평지를 기준으로 나눈 것으로, 판소리・농악의 가락이나 세곡의 납입에 차이가 났다. 완산주・강남도・전라북도의 치소는 지금의 전주에, 무진주・해양도・전 라남도의 치소는 지금의 광주에, 그리고 전라도의 치소는 지금의 전주에 있 었다. 이리하여 광주와 전주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라도에서 가장 전통 있 는 도시가 되고 있다. 주의 행정을 총괄하는 자는 도독이라 하고 도독성이라 는 성 안에서 집무를 보았다. 전라도의 장은 안찰사→관찰사라 하고 전주부 성 안에 설치된 감영에 상주하며 관내를 순찰하고, 행정실무를 맡은 영리들 은 공무수행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면서도 대사습을 열어 판소리 명창을 길 039 제1편· 전라도 자연환경과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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