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페이지 내용 : 러냈다. 병영은 조선초 강진에 설치되어 전라도 육군 지휘를 총괄하였고, 하 멜이 병영으로 유배 와서 살기도 하였다. 고려말조선초 왜구 격퇴를 위해 창 설된 수군을 나누어 지휘한 좌수영과 우수영이 순천과 해남에 각각 설치되 었다. 좌수영은 세계 최초의 특수선 거북선을 건조한 곳이고, 우수영은 13척 으로 무려 133척의 왜선을 상대로 싸워 이긴 명량대첩의 현장이다. 수영 산 하에 많은 진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목포진과 군산진은 오늘날 목포시와 군 산시의 모체가 된다. 성곽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은 그것을 키워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만들었다. 전라도 안에 104곳에 이르렀던 고려의 군현이 조선에 들어와서 57 곳으로 통폐합되었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38곳으로 줄었다. 군현마다 자기 상징으로 진산과 별호를 정하고, 행정 중심지로 읍내를 두고, 읍내 안에 각종 관공서와 제단을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군현은 거대한 읍성을 쌓아 웅 장한 성문을 냈다. 특히 30곳에 이른 읍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지 고 고창과 낙안 것만 살아남아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객 지 출신 수령이 파견되어 동헌에 앉아 집무를 보았고, 재임 중 선정을 베풀어 04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 역할 그림 1. 고창읍성
43페이지 내용 : 선정비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향교를 출입하며 향안과 향 약으로 결속한 그 지역 양반들은 향청을 두어 읍정의 자문에 응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분열되어 향전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 지역 출 신의 향리들은 질청에서 행정실무를 수행하며 그때 터득한 감각을 토대로 근 대화 과정에서 두각을 낸 이가 많았다. 신라말부터 형성된 향・소・부곡이라는 특수 행정구역이 조선초기에 완전 히 폐지되었다.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교통기지 역할을 한 역원도 20 세기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삼례・오수・성전 등은 오늘날까지 지역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군현 아래에 존재한 면은 고 려말에 등장한 후 역할이 증대되면서 조선후기에 행정구역으로 자리를 잡았 고, 그것을 일제가 통폐합하고 면장과 면사무소 및 면 직원을 두어 오늘에 이 른다. 또한 동족마을・점촌・제역촌・향화촌 등 여러 형태의 마을이 면 아래에 편재되어 있었고, 그곳에는 이장・동계・마을숲・회관 등 자치적인 조직・시설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일제가 주민 자치를 말살하고자 자연마을을 통폐합하여 행정마을로 만들고 말았다. 2. 생업의 현장 산업의 발전 전라도는 산세가 수려하고 기후가 온난하여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 한 곳이다. 그 때문에 거주 인구가 많아 조선시대 통계에 의하면 경상도 다 음의 인구수와 함께 전국 수위의 인구 밀도를 보였다. 또한 비옥한 평야가 넓 게 펼쳐져 있어 전국 최대 면적의 농토를 보유한 우리나라 농업의 중심 지역 이었다. 농토 가운데 경제성이 높은 논의 비중이 전국에서 제일 높았고, 전라 도 논에서 나오는 쌀은 전 국민을 먹여 살렸을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을 책임 졌고, 모내기와 김매기 및 물대기를 필수로 하는 논농사는 전라도 문화의 밑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최다 부담의 세금과 각계각층의 갖가지 수탈에 노출 되어 그에 대한 농민의 저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투쟁력은 개항 이후 041 제1편· 전라도 자연환경과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