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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페이지 내용 : 3. 고조선 준왕의 남래와 마한 사회 가. 고조선 준왕의 남래와 삼한정통론 『삼국지』 동이전 등 중국 사서에는 기원전 194년경 고조선의 준왕이 신 하인 위만의 정변으로 나라를 빼앗긴 후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여 한韓 왕이 되어 마한을 다스렸고 이후 진한, 변한의 명칭이 생겼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 다. 여기서 ‘한韓이란 명칭은 동북아에서 왕을 의미하는 Khan 한 汗 또는 크 다는 의미의 고유어 ‘한’을 한자로 쓴 것으로 파악된다. 바로 이 명칭이 삼한 의 ‘한’ 명칭이 된 것이다. 한편 고조선의 준왕이 남쪽으로 이동한 지역에 대 해 『제왕운기』를 비롯하여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 대부분 전 통 지리서는 현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이 고조선 준왕이 남쪽으로 내려온 지 역이라고 전한다. 이 같은 사실은 현재 전라북도권 지역에서 한이란 명칭이 시작되어 마한, 진한, 변한 등 삼한의 명칭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 조선후기 학자들은 우리 역사의 정통이 단군조 선 이래 고조선 준왕을 거쳐 마한 지역으로 계승되었다는 ‘마한 삼한 정통론’ 을 주장하여 역사정통성이 삼한 지역에 있음이 강조되었다. 위만이 정권을 장악했지만 이는 불법적인 것으로 정통성은 남쪽으로 이동한 준왕에게 있고 이를 계승한 삼한 지역에 역사의 정통이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앞서 보았듯이 고고학적으로 익산 지역과 함께 만경강을 둘러싸고 있 는 전주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중요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면서 고조선과의 연계 성이 고고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고조선 준왕의 이동과 ‘한’이라는 명칭의 사용, 그리고 조선시대 고조선의 정통성이 삼한 지역으로 계승되었다는 삼한정 통론 등으로 이어진 계승의식이 있었기에 ‘대한’이라는 명칭을 국호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중심지가 전북이었던 것이다. 이를 상징하듯이 고종은 1899년 전주 건지산 전주이씨 시조의 무덤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조경단을 설치하였다. 이같이 전라도 지역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둘러싼 호남평야를 중심으로 고조선의 정통을 이은 마한의 터전으로서 삼한에서 삼국으로 연결되는 우리 058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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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페이지 내용 : 역사 정통의 중심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나라 이름 ‘대한’ 국호의 발상지로 서 자리하고 있다. 나. 만경강 유역에서 마한 사회가 성장·발전하다 고고학 자료상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은 후기 고조선 시기인 위만조선 단 계에 점토대토기문화 단계 이래의 주민과 문화가 계승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 고 있다. 진국辰國에서 한韓으로의 명칭 변화가 진행되는 기원전 2세기 말부터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철기문화鐵器文化가 급격히 확산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진국辰國 사회는 이주민들의 남하로 인해 해체되었지만 그 핵심 세력은 기원전 1세기 초 이전에 중서부 지역에 마한馬韓과 중부 이남 지역에 변한弁 韓, 그리고 소백산맥을 넘어 경상도 지역에 진한辰韓을 성립시켰다. 마한은 한강이남 지역에서 진한・변한보다 앞서서 최초로 등장한 정치체 로서 삼한 가운데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한에 해당하는 공간 적 범위에 대해서는 한반도 중서부 지방인 경기 지역과 충청, 전라 지역이라 는 것에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 제 온조왕 27년 서기 9년 에 마한은 이미 멸망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에, 중국 측 사서인 『진서』에서는 거의 3세기 말까지 마한의 견사 기록이 남 아 있어 마한의 성립과 소멸시기뿐만 아니라 그 사회구조나 문화적 성격에 대 해서는 많은 이견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마한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서는 문헌 자료와 고고학 자료를 적 극적으로 활용하는 연구들이 시도되었다. 마한의 성립 시기와 배경에 대해 서는 준왕의 남천시기 B.C.E.194 , 위씨조선의 멸망시기 B.C.E.108 등과 관련 이 있으며, 성립 주체는 토착세력을 계승한 집단, 위씨조선계가 주축이 된 것, 부여계 이주 집단 등을 상정하고 있다. 준왕집단이 남하했을 B.C.E. 200년 경에는 당시에 한족이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한의 성립은 일반적으로 B.C.E. 3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충청・전라 지역의 청동유물과 공반되는 철기의 성격을 마한사회 소 국 성립과 관련 짓고 그 배경에는 서북한 지방의 정치적 파동과 관련된 주민 059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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