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페이지 내용 : 이동에서 비롯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준왕의 남천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고 조선 준왕의 남천지로서 익산과 전주, 완주 지역을 지목할 수밖에 없는데, 서 북한 지역의 토광묘들과 직접 연결되는 분묘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고, 군 집 내에서 계층성마저 확인되기 때문에 마한 사회에서 정치・문화적 중심지 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철기문화의 유입과 맞물 려 만경강 유역의 전주와 익산, 그리고 완주와 김제에는 토광묘라는 새로운 묘제가 전개되지만, 전남 지역은 지석묘가 여전히 축조되는 특성도 나타난다. 다. 영산강 유역 대형 옹관고분의 발전 옹관이란 큰 항아리에 주검을 넣어 묻은 무덤으로 옹관묘가 권력자의 무덤으로 사용된 사례는 전남・북 서부 지역의 삼국시대 옹관과 일본 규슈 북부 지역의 야요이시대 옹관이다. 두 지역의 옹관은 시기나 문화적으로 전 혀 다른 배경에서 출현해 직접 관련되지는 않는다. 영산강 유역 옹관의 기원 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영산강 유역이 자연환경적으로 석재가 부족 하며 목관이 썩고 시신이 훼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썩지 않는 옹관을 사용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옹관묘가 알의 모습을 띤 것과 내부에 칠한 붉은 칠 은 부활, 옹관에 새겨진 톱날 모양 문양은 태양을 상징하여 생명을 의미한다 고 볼 수 있다. 이는 옹관묘 문화가 고대 난생신화를 투영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편, 정치・사회적으로는 백제의 팽창에 따라 토착세력이 정체성을 확 보하는 상징물로서 옹관묘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파악된다. 옹관은 전북 고 창 지역에서 서남해안과 영산강을 따라 내려와 전남 해남 지역까지 분포한 다. 전남・북 서부 지역에는 3세기부터 옹관묘가 괄목할 만한 형태와 크기로 발전했다. 4세기 전반이 되면 옹관은 관으로서 기능이 강화되며 규모도 한 층 커졌다. 분구는 기존의 방형에서 점차 마제형 말발굽형 또는 장제형 긴사다 리형 이 주를 이룬다. 옹관고분은 다장제 장법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흙을 높 이 성토해서 외형을 뚜렷이 드러낸 분구가 출현하며, 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분구 가장자리를 따라 주구를 에워 쌓는 독자적인 묘역을 구획하였다. 5세기 부터 옹관고분의 규모와 형태에 더욱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분은 06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63페이지 내용 : 규모가 확대되어 고총으로 발전하였고, 기존의 제형 사다리형 또는 타원형 분 구는 원형과 방대형으로 정형화되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유적은 반남고분군 인데 옹관고분이 탁월한 규모의 분구를 갖춘 고총으로 발전되었다. 반남고분 군은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 유역을 터전으로 조영된 약 40여 기의 고분이 밀 집 분포하는데,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등지에 집중되어 있다. 일제강점기부 터 발굴되기 시작한 반남고분군은 압도적인 크기의 대형 옹관과 함께 금동 관, 금동신발, 금은장 장식큰칼 삼엽문, 단봉문 등이 부장되어 유력 수장의 면 모를 보여 주었다. 반남고분군에서 고총고분으로 발전한 시기는 5세기 후엽 6세기 중엽까지 약 100여 년간이다. 한편, 대형 옹관고분의 중심지인 반남 지역은 주변 지역과 달리 전통 옹 관 묘제를 유지하면서도 백제계 금동관, 금동신발, 금은장 무기류, 가야계 06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 흐름 그림 4. 36세기 옹관묘분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