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페이지 내용 : 도에 나타난 것처럼 주변 소국들을 거느리고 중국 양나라와 교류하며 그 위 상과 역할을 잘 나타내었다. 특히, 이 같은 전라도 권역의 해양거점 공간과 연 결된 유적에 나타난 양상은 전라도 지역이 백제의 해양 진출과 교류의 중요 거점으로서 역할했음을 잘 보여 준다. 가. 새로운 불국토를 꿈꾼 백제 중흥의 왕 무왕 해양을 통해 성장한 백제의 공식 수도는 한성 서울 강남 , 웅진 공주 , 사비 부여 지역으로 『삼국사기』에 전한다. 그런데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서 공주 부여와 함께 익산 지역이 백제의 왕도유적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 재되었다. 익산 지역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유적은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 한 왕궁인 ‘왕궁리 유적’과 삼국시대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지 유적’이다. 이 들 공간은 누가 그리고 왜 만들었을까? 익산 지역에 백제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존재는 백제의 무왕이다. 『삼 국사기』 기록에는 법왕의 아들로 나타나고 있는데 『삼국유사』에는 백제 무 왕이 삼국시대 왕들 가운데 유일하게 용龍의 자식으로 기록되어 주목된다. 즉, “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章인데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 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 속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는 것이다. 무왕의 탄생지에 대해서는 익산 지역의 금마면 서고도리 연동마을 에 있는 마룡지馬龍池와 주변 용순리 지역 명칭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같은 백제 무왕의 신화적 탄생설화는 신라의 문무왕이 동해 용이 되 었다는 사실과 대비되는 내용으로 유일하게 용의 아들로 부각된 것은 용으 로 상징된 토착성을 잘 보여 준다. 한편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은 서동薯童으로 『삼국유사』에서는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항상 마를 캐다가 파는 것을 생업으로 삼 아 사람들이 서동이라 이름 지었다.”라 하였다. 이 내용을 보면 무왕은 용의 아들이라 하였지만 평범한 시골 청년으로 성장한 존재였고 왕의 후손이란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무왕이 범상치 않은 존재로 부각되는 것 은 자신의 부인을 얻는 과정 설화이다. 당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의 미 06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69페이지 내용 : 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들은 서동이 자신의 부인으로 삼기 위해 신라까지 가 서 아이들에게 선화공주가 서동과 어울린다는 ‘서동요’를 부르게 해 선화가 왕실에서 쫓겨나자 선화를 맞아 부인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또 현재의 익 산 지역에 와서 함께 살 때 선화공주가 생계를 위해 내놓은 금팔찌를 보고 자신이 마를 캐던 곳에 이 같은 금이 많다고 하였는데, 선화공주가 금을 모 아 아버지께 보내자는 말을 따르니 신라왕실과도 관계가 좋아지고 백성들에 게도 베풀어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서동은 백제에서 신라로 건너가 자신의 부인을 맞이할 정도로 지 략과 기개가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금을 통해 신라 및 백제 지역에 서 명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친화력과 포용력을 가늠케 한다. 특 히, 한미한 존재로 묘사된 서동과 선화의 만남은 서동과 신라왕실이 정상적 이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연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신라왕실과 몰락한 백제왕실 세력과의 결합일 가능성도 추측게 한다. 한편 무왕의 왕위 등극과 관련된 금 관련 설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금 마 지역의 금이다. 사실 전라북도 지역의 ‘금’ 자 들어가는 지명을 보면 금마 와 함께 김제, 금구 등 ‘금’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으며 특히, 김제의 경우 는 금산과 연결되어 사금이 많이 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미륵신앙과 연결되어 금은 신화적인 내용이라 하였지만 미륵사에서 멀지않은 왕궁리 유 적 공방터에서 금세공 과정의 부스러기 금이 흙 속에서 상당량 찾아진 것은 결코 전설이 아닌 사실을 전하는 내용이다. 또한 미륵사지 서탑 발굴 시에도 규격화된 금으로 된 시주품도 나와 이 지역의 금 산출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다. 즉 삼국시대의 이름도 금마저金馬渚였던 이곳이 진짜 금이 났던 곳임을 알 려주며 이 금으로 무왕은 신라와 백성 모두에게 인심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이 무왕은 익산 지역의 금을 바탕으로 성장한 지방세력이거나 몰락한 왕손 중 익산에서 신라와의 협력을 통해 성장한 세력일 가능성이 보여진다. 이같이 ‘용龍의 아들’로 신성시된 무왕은 미륵사탑을 세워 익산 지역 주 민들의 인심을 얻었다. 결국 무왕은 이는 마한의 중심지였던 익산 지방 고유 의 용신앙과 불교신앙인 미륵하생신앙 미륵불이 내려와 사바세계를 극락으로 만들 06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