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페이지 내용 : 백제 부흥세력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두시원악의 정무, 구마노리성의 여 자진, 임존성의 흑치상지와 복신・도침 등이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 부흥세력이 사비성을 포위한 지 보름이 지난 10월 9일에 신라 무 열왕은 태자 김법민과 함께 다시 사비성 방면으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김춘 추는 우선 이례성 논산 연산 을 공략하여 10월 18일에 함락시켰고, 다시 10월 30일에는 사비남령의 부흥세력을 쳐 물리쳤다. 백제부흥군은 661년 2월에 2차로 사비성을 포위 공격하던 중 새로운 나 ・당 지원군의 공격으로 웅진강구에 크게 패하였고, 나아가 더욱 적극적인 전 환한 신라군의 공세에 그동안 나・당군의 침탈에서 벗어나 있던 두량이성 완 주 이서 과 고사비성 정읍 고부 그리고 주류성 등 중방 고사성 일대로 전장을 확대해야만 했다. 하지만 3월 12일부터 개시된 신라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방 어하여 4월 19일에 물리침으로써 661년 4월을 기점으로 하여 백제 부흥전 쟁은 사비와 웅진이란 금강 일대의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 중방 고사성 등 전 남북 일대의 넓은 범위로 확대하게 되었다. 이같이 661년 24월 사이 나・당 군과 부흥군 사이에 치열하게 이뤄진 전투가 기존의 사비 지역을 벗어나 점 차 금강 이남의 백제 지역으로 확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흥군은 복신・도침과 여자진을 정점으로 정무와 흑 치상지 등이 참여하는 연합으로 재편되어 조직화되었고, 이를 통해 왜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외교적 고립까지 벗어나려 모색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왕 위 계승을 통해 백제의 ‘재조再造’ 즉 ‘백제 왕조의 부흥’을 실행하려 했던 것 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본격적인 백제의 저항을 상징하는 사 건이 금마 즉 익산 지역에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6월에 대관사大官寺 우물 물이 피가 되었고, 금마군金馬郡 땅에 피가 흘 러서 그 넓이가 다섯 보가 되었다. 왕이 죽었다. 시호를 무열武烈이라 하고,… 묘호를 태종太宗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상기 사료는 백제를 붕괴시킨 신라 무열왕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백제 07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73페이지 내용 : 붕괴 1년 후인 661년 6월 금마 대관사 익산 왕궁리 유적에 있던 사찰 의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금마군에 피 같은 붉은 물이 흐르는 사건과 무열왕의 죽음을 연결하여 보여 준다. 이 기사는 태종 무열왕의 비정상적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금마 지역의 반신라적 성격과 백제부흥세력의 적극 적 반격의 신호로 파악될 가능성을 보여 준다. 특히, 당시 왜에서 백제부흥을 위해 원병이 처음 출발한 661년 5월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기록은 전라북도 권의 백제 유민세력이 본격적인 부흥전쟁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660년 8월 의자왕이 항복한 직후 지방에 남아 있던 백제의 세력들은 각 지역에서 백제부흥 전쟁을 전개하였다. 백제부흥전쟁의 거점 지역은 임존성 任存城과 주류성周留城으로 양분되었다. 임존성任存城은 백제의 서방을 관할 하던 곳으로 충남 예산의 봉수산 지역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곳은 유명한 흑 치상지 등이 중심이 되어 초기에 당과 신라군에 대항하였다. 그런데 백제부흥군의 핵심거점은 주류성이었다. 이곳은 복신과 도침 및 일본에 있다 귀국해 부흥군의 중심이 되었던 왕자 부여풍 등이 함께 활동한 부흥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주류성 위치에 대해 충남 한산 건지산설, 홍성설, 전북 부안 우금산성설 등이 제시되고 있다. 한산의 건지산성을 주류성으로 보는 견해는 주변 지형 등이 역사기록과 부합되지 않는 문제점과 최근 발굴 을 통해 축조시기가 고려후기로 파악되어 더 이상 주류성으로 보기 어렵게 되었다. 최근 학계는 지형과 관련 기록의 연결성을 감안할 때 부안의 우금산성 이 주류성으로 파악된다고 보고 있다. 『일본서기』 등 사료를 보면 “주류성의 위치는 백제부흥전쟁 수행과정에서 바닷가에 위치해 방어와 왜국倭國과의 통교에는 유리했지만 농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토지가 척박하여 농업과 양잠 에 적합지 않아 이후 피성避城 현재 김제 으로 이동하였다가 다시 복귀하였다.” 라는 상황이 기록되었다. 따라서 주류성은 김제 지역과의 관계도 고려되어야 하며 또한 663년 백제부흥군과 왜 원병이 신라와 당의 군대와 대규모 전투 를 행한 백강구와 인접한 곳이다. 한편, 왜에 주재하고 있던 풍장이 백제왕으로서 백제부흥을 위해 귀국 07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