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페이지 내용 : 한다. 660년 백제붕괴 직후 왜는 백제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준비 하였고 3차례에 걸쳐 각각 1만-2만 7천에 달하는 원군을 보냈다. 특히, 663년 8월 마지막 전투가 치러져 백제-왜 연합군이 신라-당 연합 군에 대패하며 부흥전쟁은 종식되었다. 이 전쟁은 동북아 한・중・일의 군대가 최초로 맞붙은 국제전쟁으로 백제가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백제유민 이 대거 왜로 건너가 새로운 국가 일본을 마련하고 신라와 당이 고구려를 본 격적으로 공격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동북아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게 되 었다. 전쟁이 치러진 백강의 위치에 대해서는 금강설, 동진강설, 금강-동진강 합구설 등으로 크게 대비되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주류성, 피성, 백강구로 연결되는 공간으로 가장 적합한 공 간은 이후 675년 당나라의 신라장악 야욕을 꺾은 나당전쟁의 격전지 기벌 포와도 연결되는 곳으로 이는 ‘갯벌’을 의미하는 계화 界火를 화火의 원발음 ‘불’ 로 읽으면 =개불=개벌 와 연결되어 현재의 동진강 하구가 된다. 이같은 동아시아 국제전쟁이 벌어진 백강은 동진강 하구 일대이고 주류성의 위치는 부안 우 금산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곳은 김제 지역과도 인접하고 당시에는 해수가 더 들어와 섬처럼 둘러싸인 곳으로 특히 산 정상에는 부흥군의 중심인 복신 이 머물던 복신굴과 산성 성벽이 여전히 잘 남아 있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패하자, 복신福信과 도침道琛을 위시한 백 제부흥군은 일본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일본에 체류 중이던 풍은 661년 1차 일본의 원군을 거느리고 귀국, 복신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어 격전을 벌여 나・당연합군을 위기에 빠뜨렸다. 그러나 복신이 도침을 살해하여 전권을 장 악하려 하자, 풍은 복신을 살해한 뒤 실권을 잡았다. 부여풍은 663년 백강白 江에서 백제부흥군 및 왜국이 보낸 원병과 함께 나당연합군과 싸웠으나 1천 척의 함선 가운데 4백 척이 불타는 대패를 당하자 배를 타고 고구려로 망명 했다. 이 같은 지도부의 내분이 부흥전쟁을 좌절케 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서기』에 따르면 663년 9월에 주류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부흥세 력은 붕괴되었다. 이때 백제 귀족들은 “오늘로써 백제의 이름이 끊어졌으니 조상의 무덤도 다시 찾아뵙지 못하게 되었다”며 왜로 망명길을 떠났다. 072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75페이지 내용 : 663년의 백강전투의 패배로 말미암은 백제부흥전쟁의 실패는 백제의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백제에는 많은 ‘백제유민’이 발 생하게 된다. 이들 백제유민들은 현실적으로 신라의 복속민이 되거나 풍장 왕과 같이 고구려로 망명한 소수의 백제유민을 제외하고는 당시 백제를 도우 러 온 왜국으로의 피난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백제와 왜국 은 이전부터 오랫동안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었고, 이제 당과 신라를 대적해 야 하는 동병상련의 현실적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한편, 1979년 12월 우금산성 아래 개암사에서 『별기』라는 기록이 발견 되었는데 내용 중 17세기경 만들어진 『개암사사적기』에 우금산성을 주류성 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내용이 확인되어 우금산성 주류성설을 더욱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같이 최근 국내외 백제 관련 연구자들은 백제의 마지막 거점 주류성 에 대해 대부분 부안 우금산성 쪽으로 입장을 모으고 있다. 또한 이곳은 백 제 유민들이 마지막 눈물을 흘리며 백제라는 이름이 사라져감을 아쉬워하며 일본으로 이주해 간 곳이다. 따라서 이 같은 주류성으로 파악되는 부안 개암 사 뒤의 우금산성에 대한 발굴조사와 학술연구, 지역사 교육과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부각하는 사업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통해 백제의 마지막 부 흥의 꿈과 새로운 백제의 역사를 찾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다. 견훤, 전라·충청 전주, 무주, 공주 권을 아울러 백제 부활을 선포하다 “신라가 말년에 쇠미하여지자 정치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흩어졌다.” 『삼국사기』 궁예전. “왕의 총애를 받는 소인배들이 왕 가까이 있으면서 정권을 도둑질하고 농락하니 기강이 문란하고 해이해진 데다 기근마저 덮치자 백성들은 정처 없 이 흩어지고 도둑의 무리가 벌떼처럼 일어났다.”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 신라는 하대 780935 에 이르러 국가적 혼란의 누적으로 통제력이 급속 073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