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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페이지 내용 : 견훤은 후백제왕을 자칭하고 관제를 정비하는 한편, 현재 중국의 항주 지역에 있었던 오월吳越과 후당後唐, 거란契丹 및 일본日本에도 사신을 보내어 국교를 맺거나 통교하는 등 국제적 역량과 위상 확대를 꾀하였다. 이는 해양 국가 백제의 위상을 회복하고 해양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견훤의 의지가 나 타난 것이다. 특히, 현재의 항주 지역에 위치한 오월과 일찍부터 교류하여 전 주에 정도한 900년 사신을 파견하였고 오월왕은 보빙사를 파견하는 등 국제 교류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당시 후백제가 중국과 교류한 항로는 후에 고려가 군산도 즉, 현재의 선유도 지역을 활용하여 송나라와 교류하였던 상황을 감 안하면 현재의 만경강을 활용하여 전주에서 군산도 선유도 및 흑산도를 이용 한 항로를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후백제의 대외정책은 후삼국 간 의 관계에서 국제적 위상을 활용해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 강 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35년 경순왕 9 왕위 계승 문제로 갈등한 장자 신검神劍의 정변으로 견훤은 금산사金山寺에 유폐되었다 탈출해 고려에 투항 하고 자신의 사위 등도 투항케 해 후백제 지도부는 분열되었다. 결국 935년 신라의 경순왕은 왕건에게 항복하고 936년 왕건이 선산 부근에서 신검의 후 백제군을 격파하자 후백제는 결국 45년 만에 붕괴되었다. 당시 견훤의 투항과 후백제 지도부를 와해시킨 행동에 대해 부자갈등에 의한 자멸이란 평가도 있지만 당시 대세가 고려로 기운 상황 등을 감안하여 대규모 전쟁에 의한 백성들의 죽음을 막기 위한 대승적 조치로 파악하려는 입장도 참고된다. 한편, 문화군주를 꿈꾸고 후삼국 통일을 기약하며 다양한 정책을 시행 한 후백제왕 견훤과 결자해지적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고려 왕건에 귀부하고 대규모 살상을 막으며 후삼국 통일을 이뤄낸 견훤의 역사적 평가가 새롭게 시도되어야 한다. 라. 새로운 가야 역사의 거점, 전북 최근 한국 고대사의 새로운 화두로 ‘가야’가 떠오르고 있다. 가야는 고구 려, 백제, 신라와 함께 우리 고대사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문헌사료의 절대 부 07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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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페이지 내용 : 족과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한 왜곡에 의해 가야의 실체와 역사적 위상이 밝혀 지지 않은 채 삼국 중심의 한국고대사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이 같은 가야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이후 급증한 가야 유적의 발굴을 통해서였다. 가 야 관련 유적은 경상남도를 비롯해 경상북도, 부산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에까지 분포하지만 지금까지는 금관가야 김해 지역 와 아라가야 함안 지역 그리 고 대가야 고령 지역 가 있었던 경상도 지역의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전라북도 지역에서도 동부 지역 7개시군 남원, 완주, 진안, 무주, 장수, 임실, 순창 에 690개의 가야 유적 고분 448, 제철 129, 봉수 68, 산성 45 이 분포하고 있는 상황이 파악되었고 2018년 2월 전북 가야 유적으로 남원 두락리・유곡리 고분군이 첫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전라북도의 가야역사 진입이 공식화 되었다. ‘가야’라는 나라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기록에 따라 「광개토왕릉비문」 에는 가라加羅, 『삼국사기』에는 가야伽倻, 加耶, 『삼국유사』에는 가락駕洛 등으 로 다양하다. 가야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를 강이나 호수의 의미로 파악해 낙 동강 주변 지역의 의미로 보는 견해도 있고 동족을 의미하는 퉁구스어의 ‘칼 라 xala ’에서 그 연원을 찾기도 한다. 또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의 출신 지역 인 인도의 불교관련 용어인 부다가야에서 찾기도 하지만 아직 명확한 의미는 모른다. 다만 전국적으로 ‘가야’라는 지명이 강변이나 해변 지역에서 나타나 고 있어 바다나 강변을 의미하는 명칭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종래 가야는 삼국과는 달리 통일된 정치체를 갖지 못해 멸망 때까지 10 여 개 이상의 개별 소국명이 병렬적으로 존속하고 있었다. 따라서 ‘가야’는 신라・백제와 구분되는 연맹체 국가로 보고 있다. 가야 역사에 대한 기록은 매우 소략하지만, 역설적으로 고고학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 있어서 그 문화상의 복원뿐 아니라 역사의 재구성도 시도되고 있다. 가야의 기존 영역은 경남과 경북일대로 보았으나 가야 유물이 낙동강 동쪽 일부와 호남 동부지역, 그리고 전남 광양만, 순천만 일대와 최근에는 전 북 남원, 장수, 진안, 임실에서도 확인돼 영역이 상당히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가야 영역의 변화와 확산은 고구려의 백제 공략과 밀접히 관련 있다. 즉, 400년 광개토왕의 한반도 남부지역 정벌로 김해 가락국세력이 쇠 07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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