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갈피 추가
페이지

82페이지 내용 : 1. 전라도 역사에서 고려의 위치 전라도는 현재의 광주시 및 전라남・북도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다. 본 시 하나이던 것이 광역시와 남・북도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었는데, 지금도 흔 히는 단일한 권역으로 간주해 전라도라 칭하는 게 보통이다. 호남이니 전라 지역이니 부르는 것도 그와 매한가지이거니와, 그리하여 전라도는 행정구역 상의 공식적인 구분에 상관없이 하나의 지역 명칭으로 사용되는 게 관행화 한 지 오래이다. 전라도라는 명호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왕조에서였다. 고려시기에 들 어 비로소 전라도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설정되어 자리를 잡아갔다. 전라도 라는 명호를 처음 사용한 게 고려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그 명칭에 집중해 서 굳이 고집하자면 전라도의 역사는 그 출발점을 고려시기로 잡아 마땅한 셈이다. 전라도 일대를 아우르는 이 고장의 실제 역사가 그보다 훨씬 먼 옛날 에 시작되었을 것임은 이를 나위가 없다. 다만 형식적으로나마 명호의 규범성 제2장 고려시대 08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페이지
책갈피 추가

83페이지 내용 : 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고려는 전라도의 역사가 첫 발을 내딛는 시기 에 해당한다고 하여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단일한 지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전라도가 그처럼 자리 를 잡기까지의 경위는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에서 전라도 일대 가 하나의 지역 단위로 묶여 파악되는 단초는 대략 후삼국시기에 들어 비로 소 마련되는 듯 보인다. 수십 소국의 연맹체이던 마한은 이를 나위가 없으며, 중앙집권적인 백제나 통일신라의 시기에도 전라도 일원은 최소한 둘 이상으 로 나뉘어 파악되었다. 그러다가 신라의 말기에 후백제가 건국되면서, 나주 를 중심으로 한 전남의 서남해안을 제외한 전라도 일대가, 비로소 신라나 고 려와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적인 정치체로 등장하였다. 후삼국시기의 치열한 쟁패전, 특히 고려・신라의 연합전선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후백제 즉 현 전라 도 일원의 주민들 사이에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의식이 싹텄을 가능성이 엿보 이며, 이로써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지리적 단위로서의 전라 지역이 배태되는 단초가 마련된 것으로 파악할 수가 있을 성싶다. 후삼국을 통일한 뒤 왕건이 남겼다는 943 , 그렇지만 아마도 그 손자인 현종대 10091031 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이른바 ‘십훈요十訓要’에서, 대체로 현 전라도 일대 를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車峴以南 公州江外’가 하나의 지리적 단위로 묶여서 등장하는 것은 그 연장선에서 이해되어 마땅할 터이다. 전라도가 하나의 지역 단위로서 제 틀을 잡아간 것은 고려중엽에 들어서 였다. 현종대에 그 명호가 처음 출현한다고는 하지만, 전라도가 독자적 경역 으로서 나름의 기능을 지닌 용어로 안착된 것은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성 종대 981997 만 해도 강남도와 해양도의 둘로 나뉘어 파악되던 이 지역이, 안찰사의 단일 순행구역으로서 제 모습을 굳혀가기에 이른 것은 대략 예종대 11051122 즈음에 가서였다. 후삼국시기 이래 특히 십훈요가 출현한 현종대 를 거치면서, 전라도 일원을 단일한 지역 단위로 파악하던 공간적 인식을 배 경으로 가능한 일이었을 것임은 물론이다. 더불어 거기에는 개개의 군현 단위를 벗어나 보다 광역의 지리적 단위로 묶어서 지방행정을 펼쳐야 할 중앙의 필요성이 개재되었을 법하다. 나아가 그 08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탐 색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