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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페이지 내용 : 나주 지역은 후삼국 쟁패의 초반에 벌써 왕건과 손을 잡았다. 왕건은 즉 위하기 전 궁예의 휘하로서 상당한 기간을 나주에서 보냈으며, 즉위한 뒤에 도 이 지역에 남다른 관심을 쏟았다. 나주도대행대라는 특수 행정기구를 설 치하고, 나주 출신인 장화왕후 오씨의 소생을 후계자로 지목하였으며, 그 밖 에도 나주 일대를 연고로 하는 인물이라든지 승려 등 여러 사람들을 자신의 곁에 두고 도움을 받았다. 나주 지역과 왕건 사이의 각별한 관계를 헤아리고 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쟁패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즈음, 전라도 일원에서 두 나라의 영역에 얼마간의 변화가 생겼다. 나주 지역은 잠시 고려 중앙의 통 제에서 벗어난 듯싶었으나 이내 고려의 판도로 다시 들어왔으며, 전남 동부 의 승주 지역이 새로이 고려의 세력권에 포함되었다. 견훤에 뒤이어 박영규가 고려로 귀부해 온 데 따른 경역의 변화였다. 후삼국의 말엽 즈음이면 광주를 비롯한 동북부 내륙을 제외한 전남 지역의 상당 부분이 고려의 통제 아래 들 었으며, 뒤이어 곧장 고려에 의해 통합이 마무리되거니와, 당시 전라도 역내에 서의 그와 같은 일련의 상황과 관련하여 눈길을 모으는 게 이른바 십훈요이다. 십훈요는 태조 왕건이 자신의 뒤를 이을 후대 왕들에게 남긴 열 조목의 유훈을 가리킨다. 고려의 역대 국왕들로 하여금 준수하도록 당부한 일종의 왕실 가훈이었는데, 그중에서 전라 지역에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며 긴 세월 주목을 받아 온 것이 8조의 ‘車峴以南 公州江外’ 운운의 부분이다. 차령산맥 과 금강의 이남, 곧 현재의 전라도 일대를 거의 아우르는 지역이 고려왕조에 서 차별을 받았을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십훈요는 그 내용의 신빙성이라든지 그것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 지기에 이른 경위 등에서 적잖이 의심을 받는 자료이다. 나아가 십훈요를 태 조의 실제 유훈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고려 일대에 그 내용이 제대로 준수되었던가를 두고는 부정적인 견해가 대부분이다. 십훈요의 존재가 세상 에 처음 알려진 현종대의 정치적인 상황이 반영된 자료일 가능성이 지적되는 게 보통이거니와, 반드시 그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이 자료를 근거로 고려시 기에 전라 지역이 차별을 받았다는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 게 대체적인 분 08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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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페이지 내용 : 위기인 것이다. 현대에 들어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에 의해 조작되고 부풀려진 지역 사이의 갈등 내지는 특정 지역을 차별하는 폐습이, 마치 오랜 과거 이래 의 일이었던 양 강변하며 십훈요를 내세워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양태는 규 탄을 받아 마땅하다. 태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혜종은 나주 출신인 장화왕후 오씨의 소생이 었다. 왕건이 고려를 창업하는 데 나주 지역의 각별한 후원이 크게 작용하였 으며, 그리하여 왕건을 계승한 혜종 정권이 그러한 나주호족을 중심으로 운 영되었을 것임을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후일 최승로가 혜종대의 정치를 평 하면서 ‘鄕里小人’ 운운하며 비난했던 세력이 그 주축이었다. 그렇지만 혜종 은 2년 남짓 재위하는 데 그쳤다. 뒤이어 정종定宗이 정변을 거쳐 즉위하고,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광종의 치세에 들어 숙청의 회오리가 일면서, 중앙에 진출한 나주세력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혜종은 짧은 재위에 그치는 등 국왕으로서 내세울 만한 치적을 남기지 못하였던 듯 보인다. 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 전하지를 않는다. 다만 고려왕조 에서는 그를 창업과 수성에 크게 기여한, 이를테면 왕조의 태종太宗에 해당되 는 국왕으로 인식하였으며, 그리하여 말기에 이르도록 태묘太廟에 부천지위不 遷之位로 모셔 제향하였다. 한편 혜종과 뗄 수 없는 연고를 지닌 나주고을에서 는, 어향御鄕을 자처하며 또한 그를 기리는 제향을 이어 갔다. 흥룡사興龍寺 및 그 경내에 들어섰다는 혜종사惠宗祠의 존재가 그것을 웅변하거니와, 조선 세종 대에 이르도록 현지에서 혜종의 소상塑像과 진영眞影을 모셔왔음이 확인된다. 혜종대의 나주를 이어, 정종의 즉위와 함께 문득 그 존재를 새로이 한 고장이 승주 곧 오늘의 순천이었다. 순천 출신인 박영규의 두 딸이 정종의 왕 후였던 것이다. 순천의 해상세력 출신 호족인 박영규는 후백제왕 견훤의 사 위이며 장군이었는데, 견훤을 따라 고려로 귀부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딸 하 나는 왕건의 부인이 되었으며 다른 두 딸은 정종의 왕후가 되었다. 박영규를 필두로 한 순천 지역의 위세가 한때나마 상당하였음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정종의 재위 기간은 4년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광종대의 숙청과 함께 얼마 동안 중앙에서 순천 출신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박영규 자신은 후일 순 085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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