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페이지 내용 : 천의 해룡산신으로 추앙되어 지역사회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이름을 남겼다. 고려초 태조와 혜종・정종이 재위하는 동안, 전라도의 서남부와 동부 해 안 지역은 나름대로 그 존재를 드러내었다. 반면에 전남 동북부 내륙 및 전북 일대는 옛 후백제의 영역으로서 중앙과 연고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렇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광종의 개혁정치와 함께 새로운 세력의 일원 으로서 이 지역 출신도 점차 중앙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성종과 현종 대에 이르도록 전라도 출신의 중앙 진출은 끊임이 없었거니와, 고려초 중앙 에 진출하여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살아남은 일부에다 광종대 이후 새로이 성장한 이들이 더해져, 고려전기에 전라도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것으로 꼽히 는 주요 세력이 형성되었다. 고려에서 체계적인 제도에 바탕하여 전라도 일원을 통치하기에 이른 것은 성종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리하여 12목 중 전라 지역에는 전주목과 나주목・승 주목이, 그리고 10도제가 마련되면서는 노령 이북과 이남에 각각 강남도와 해 양도가 들어서게 되었다.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관리가 지방을 통치하는 시대 로의 전환이거니와, 신라말 이래로 자립의 형세를 유지하던 이 지역의 호족은 이제 저들 지방관을 보좌하는 장리長吏, 곧 행정실무자로 자리매김되었다. 성종과 함께 고려의 통치체제 정비에 크게 기여한 국왕이 현종이었다. 그는 즉위하기까지의 경위가 남다르며, 더욱이 전라 지역과도 각별한 인연을 지녀 눈길을 끈다. 자못 이색적인 출생의 내력에 더해, 극심한 고초 속의 유 소년기를 거치며 정변을 통해 국왕으로 추대되었는데, 재위 중 두 차례의 거 란 침입을 겪는 가운데 1010년 현종 원년 의 제2차 거란 침입 당시 이 고장 나 주로 몽진하였던 것이다. 곡절 많기로는 손에 꼽히는 국왕이려니와, 피난길에 오른 현종 일행은 신변의 위협을 당하는 등 천신만고를 겪으면서도 나주를 찾아 먼 길을 마다지 않았다. 고려왕실이 그만큼 나주 지역을 깊이 신뢰하였 다는 뜻이려니와, 개경으로 돌아간 뒤 현종은 나주를 왕조중흥에 기여한 고 장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나주에서 팔관회八關會를 개최토록 함으 로써 이 고을로 하여금 개경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도록 우대하였다. 나주 가 제2의 수도에 비길 만한 지위를 누렸다는 게 정도전鄭道傳의 소회이다. 086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89페이지 내용 : 3. 사회와 경제 고려의 지방 통치제도가 나름의 자리를 굳힌 것은 현종대에 가서였다. 1018년 현종 9 에 4도호都護와 8목牧을 필두로 56지주군사知州郡事와 28진장 鎭將 및 20현령관縣令官을 설치함으로써 지방 통치의 얼개를 갖추었다. 전라 도 지역에는 전주목 안남대도호부 과 나주목을 계수관으로 하여 남원・영광과 임피・해양 등 몇몇 지주군과 현령관이 설치되었다. 이들 수령이 파견된 ‘주현 主縣’은 중앙에 직첩直牒하며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는 반면, 수령이 없는 ‘속현屬縣’은 ‘주현’을 통해 중앙과 연결되는 구조였으며, 각각 고을의 크기에 맞춰 향리의 정원도 제정되었다. 또한 뒤에는 고려에 특유한 그와 같은 주현- 속현제도의 소산인 감무가 자리를 잡아 조선시기의 현감으로 이어졌다. 아울 러 수령이 부임하는 고을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지방제도의 추이에 따 라, 허다한 속현과 향・부곡・소・장・처 등의 특수 행정구역을 주요 배경으로, 월경지라는 특이한 존재가 생겨나 전통시기 내내 존속하였다. 지방 통치제도 의 정비에 발맞추어 지방군제地方軍制도 자리를 잡아갔다. 전주목도와 나주 목도를 포함하여 전라도 지역에는 모두 9개의 군사도軍事道에 보승・정용・일 품군 합하여 1만 1,000여 명의 군사가 배정되어, 고려 주현군의 약 23% 정도 를 점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전라도는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1018년 현종 9 에 탄생하였다고 한다. 과연 그처럼 이른 시기의 일이었을까 논란이 없지 않거니와, 다만 그것이 광 역의 행정단위로 실제 자리를 잡아간 것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대략 예종대 즈음에 가서였던 듯 보인다. 이후 무인정권기를 지나 원의 간섭기를 거치면서 안찰사의 역할이 확대되어간 끝에, 고려말 도관찰출척사로 정비되면서 도道 가 하나의 행정단위로서 정착되는데, 전라도 역시 그와 유사한 궤적 속에서 뿌리를 내려간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고려중기 이래 전라도가 그처럼 자리 를 잡아가던 즈음, 오늘의 제주 지역이 전라도에 편입되었다. 탐라의 이름으 로 백제와 통일신라 그리고 고려에 소속되어 조공을 바쳐오던 이 섬을, 숙종 087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