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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페이지 내용 : 히는 곡창지대로서 수탈의 주요한 대상이었다. 토지 탈점이라든지 개간을 배 경으로 농장이 형성되면서는, 전라도 일대에 무인집권자의 농장이 널리 개설 되었다. 최씨 정권의 3대 집정에 오른 최항이 승려 만전이던 시절, 화순의 쌍 봉사를 거점으로 자행하였다는 탐욕적인 여러 행위들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임은 물론이었다. 무인정권에 들어 한층 심해진 수탈은 고려중기 이래 유민화 경향을 보이 던 농민의 토지 이탈을 가속화하였다. 늘어난 유민은 때로 도적 집단이 되어 각지를 횡행하며 소란을 일으켰다. 무신란 이래 만연한 하극상 풍조는, 저들 동요하던 농민을 자극하여 곳곳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나도록 만들었다. 전 라도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잇달았다. 1182년 명종 12 전주의 기두旗頭 죽 동竹同이 군인과 관노를 선동하여 일으킨 반란이라든지, 1236년 고종 23 에서 이듬해에 걸쳐 담양과 광주 일원을 휩쓴 이연년李延年의 백제부흥운동은 그 중 저명한 사례였다. 전란도 그치질 않았다. 1219년 고종 6 의 거란 침입에 이어, 1231년 고종 18 에 시작된 몽골의 침입은 1259년 고종 46 에 이르도록 30년가량 지속되었 다. 그러고도 끝이 아니었다. 삼별초의 항쟁이 1270년 원종 11 에서 1273년 원 종 14 까지 이어졌으며, 뒤이어 1274년 충렬왕 즉위년 과 1281년 충렬왕 7 에는 2 차에 걸쳐 여원연합군이 일본 원정에 나서기도 하였다. 13세기 거의 내내 고 려는 외세와의 원치 않는 전란에 휩싸여 커다란 고초를 겪었던 셈이다. 전라도라고 하여 전란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난 게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몽골의 전라도 침략이 1236년 고종 23 에 시작되어 1257년 고종 44 까지 전후 5차례에 걸쳐 20년 이상 이어졌다. 장성 입암산성 공방전에서의 승리라든지, 신안 앞바다에서 군선을 동원해 해전을 시도한 몽골군을 격퇴한 압해도 전 투 등은, 그중 손꼽을 만한 예에 든다 할 것이다. 진도에 들어선 삼별초 정권 의 활동 및 그 격퇴를 위한 일련의 전투에서 전라도 일원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뒤이은 제주도 삼별초 진압과 일본 원정에서도 병량과 인력 의 동원에 크게 시달림을 당했다. 특히 2차례의 일본 원정 당시 각각 900척 씩 모두 1,800척의 군선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그 조선을 전담한 게 부안 변 090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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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페이지 내용 : 산과 장흥 천관산 일원임으로 해서 전라도 지역사회가 받은 고통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무인집권 하의 격동과 변혁의 시기에 전라도를 배경으로 이채로운 빛을 발한 게 불교개혁을 내세운 결사체의 존재였다. 순천 송광사를 근거로 활약 한 조계종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 수선결사 와 강진 만덕사를 거점으로 삼 은 천태종 원묘국사 요세의 백련결사를 이름이다. 이들은 개경을 중심으로 한 기성 교단이 세속화한 가운데 종파적인 편협성에 사로잡혀 갈등을 일삼 는 실태를 비판하면서, 함께 불교 혁신을 부르짖었다. 비록 둘 사이에 수행 이 론이라든지 그 실천 방법을 둘러싼 차이는 없지 않았지만, 궁극의 지향점은 다르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파임에도 불구하고 지눌과 요세 및 그 후계자인 진각국사 혜심과 정명국사 천인 사이에는 대를 이어 교류가 지속되었거니와, 그리하여 수선사와 백련사는 서로 협력하고 또한 경쟁하는 가운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고려 불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수선사와 백련사가 그처럼 고려 불교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뒷받침한 것은 전라도 지역사회였다. 지눌이 송광산 길상사를 중건 하여 조계산 수선사로 만드는 데 나주와 순천을 비롯한 주변 토착세력가들 의 적극적인 지원이 줄을 이었다든지, 또는 요세가 만덕산 백련사를 개창하 는 데 강진 지역 토착 유력자들의 후원이 토대가 되었던 사실 등에서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전라도 지역민의 그와 같은 후원을 바탕으로 불교개혁을 주도함 으로써, 수선사와 백련사는 한국불교사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존재로 우 뚝 서게 되었던 것이다. 고려후기 들어 전라도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이어졌다. 감무를 비롯한 수령의 파견이 늘면서 속현이 줄고, 향・부곡・소를 비롯한 특수 행정구역이 자취를 감추어갔다. 단속적인 읍격의 승강과 행정구역의 병합으로, 고을의 영역이 조정되는 것과 함께 군현 등의 절대 숫자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변해 갔다. 무신란 이래 이어진 지역사회에서의 정치적이며 사회・경제적인 격동에 중앙이 반응하면서 나타난 변화였다. 새로운 세력의 성장과 중앙 진출도 활발하였다. 고려전기 이래의 일로서 091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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