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페이지 내용 : 설파한 정치이념의 서책인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국왕에게 최초로 진강하여 고려말 주자성리학의 수용・정착에 이바지한 윤택尹澤,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 해 경렴정을 지어 소요하면서 이제현・이색・정몽주・길재를 비롯하여 이숭인・ 윤소종・권근과 같은 손꼽히는 당대 성리학의 대가들과 교유한 것으로 이름 이 있는 탁광무卓光茂 등, 전라도 출신으로서 고려시기 유교의 역사에서 빼놓 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유교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시문의 유행을 낳았다. 유교 사상을 글로 표 현하는 주된 방식이 시문이었으며, 그런 만큼 전라도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떨 친 인물이 다수 나타난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일이 거명하기 어 려울 정도이거니와, 위에서 언급한 유학자를 제외하고도, 고문古文에 능해 해 동제일이라 칭송을 받은 김황원金黃元이라든지, 죽림고회의 일원이었던 오세 재吳世才와 조통趙通, 이규보·최자를 잇는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김구金坵, 더 욱이 유교적 덕목의 실천으로 명망이 높은 가운데 한국 역사상 최초로 역대 의 시문을 집성해 『동국문감東國文鑑』을 편찬한 김태현金台鉉 등, 한문학사에 이름을 올려 마땅한 인물들만도 여럿이었다. 유교와 함께 불교가 또한 매우 번성하였다. 수많은 고승이 활약하는 가 운데 유명한 사찰이 거의 고을마다 자리하였다. 손을 꼽으며 헤아리는 게 무 의미해 보이거니와, 허다한 경전을 간행함으로써 흔히 화엄종의 대각국사 의 천에 비견되곤 하는 법상종 혜덕왕사 소현과 김제 금산사를 위시하여, 불교 개혁을 주장하며 독자적 수행이론을 정립하여 교종과 선종의 조화를 추구 하는 정혜결사를 이끈 조계종 보조국사 지눌과 순천 송광사라든지, 그러한 지눌과 교류하는 가운데 역시 불교 개혁을 지향하며 참회로써 정토왕생을 꿈꾸던 천태종 원묘국사 요세와 강진 만덕사 등, 별처럼 빛나는 존재만도 하 나 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송광사의 지눌은 고려 불교의 내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새로운 길을 제시한 고승으로 이름이 높은데, 더욱이 심성의 도야 를 강조함으로써 장차 성리학을 받아들이는 터전을 닦아주는 구실을 하였 다는 평가에서 새삼 그의 사상사적 위상을 되짚게 된다. 불교 외에도 민간에서는 토속적인 신앙이라 이를 만한 기복의식 내지 신 094 총설· 전라도의 위상과역할
97페이지 내용 : 이한 대상을 숭배하는 행위들이 성행하였다. 그중에는 국가적인 관심의 대상 으로 떠올라 기록을 남긴 사례도 적지 않은데, 가령 산악과 하천・바다의 산 신과 수・해신이라든지 성황신 등이 그러하였다. 전라도만 하더라도 구례의 지리산신과 나주 금성산신을 비롯하여 영암의 월출산신과 남해신 및 광주 무등산신이라든지 역사상 실존 인물을 신격화한 순천과 순창・곡성의 성황 신 등, 허다한 산신과 수・해신 및 성황신이 널리 숭앙되며 관련 자료를 후대 에 남겼거니와, 이들은 대체로 지역 토착세력을 상징하는 존재로서 널리 지역 민의 존숭을 받는 게 상례였다. 나아가 당시 상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던 풍수지리설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신라말 영암 출신의 도선 을 비조로 하는 지리도참의 이 고장 출신 전문가로서, 고려중엽에 무등산처 사라 불리며 국왕의 신뢰 속에 활동의 자취를 남긴 은원충이 눈에 띈다. 한편 신앙생활과 연관된 종교 의식이나 또는 크고 작은 축전에는, 노래 와 춤이며 악기 연주라든지 줄타기나 접시돌리기와 같은 갖가지 연희가 따르 는 게 보통이었다. 일종의 종합연희가 베풀어졌거니와, 구체적인 기록을 찾아 보기는 쉽지를 않지만 민간에서의 여가생활도 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 을 성싶다. 전라도 일대의 민간에서 불렸을 법한 노래로는, 옛 백제 지역의 속 요로 전하는 ‘선운산가’, ‘방등산가’, ‘무등산가’, ‘정읍사’, ‘지리산가’를 비롯 하여 고려말에 탄생한 ‘장생포가’ 등이 꼽히곤 한다. 수령이 주관하는 의식을 위시하여 고을에서 베풀어지는 축전 등 공사公私를 막론한 여러 행사에서는, 주로 관기官妓를 비롯하여 재인才人 광대 등이 악기를 다루고 노래를 부르며 또한 여러 잡희를 공연하였을 텐데, 특히 고려 현종대에 베풀어진 것으로 알 려진 나주 팔관회에서는 개경의 그것과 유사하게 난장亂場이 펼쳐진 가운데 가무・잡희로 떠들썩한 국제적인 축전이 열렸던 것으로 보여 주목에 값한다. 미술은 대체로 불교 쪽의 자료가 많이 전하는 편이다. 다만 회화의 경우, 그 작품이 현전하지는 않지만 중국의 송에서까지 그림 솜씨로 명성이 자자했 다는 전주 출신인 이녕・이광필 부자의 존재가 눈길을 끈다. 불교 문화재로는, 불상과 승탑 부도 , 석비, 범종, 석등 및 경전・고문서에서 향로・사리합과 같은 불구류佛具類에 이르기까지, 자못 풍부한 자료가 전한다. 등록된 자료만 200 095 제2편· 전라도의 역사적흐름